두 눈 부릅뜨고 지켜본 n번방 재판 기록

김은형 2022. 5. 13.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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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사회를 뒤흔든 2020년 초 소셜미디어에 널리 퍼졌던 해시태그다.

<그래서 우리는 법원으로 갔다> 는 n번방의 판결이 그다음 n번방의 먹이가 되는 걸 더는 지켜만 볼 수 없었던 여성들이 전국을 뛰어다니며 땀과 분노로 기록한 재판 방청 후기다.

책은 이들이 조사한 n번방 사건 주요 가해자 관계도와 판결 내용 등의 자료 외에도 디지털성범죄 대처방법과 재판 방청 가이드, 기록 양식 등을 세밀하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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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으로 만들어진 eNd
가해자들 재판 방청연대 활동
형사재판서 소외되는 피해자 위해
기록 남기고 여성연대 힘 보여줘

그래서 우리는 법원으로 갔다
팀 eNd 지음 l 봄알람 l 1만5000원

‘#n번방은_판결을_먹고_자랐다’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사회를 뒤흔든 2020년 초 소셜미디어에 널리 퍼졌던 해시태그다. 다크웹 운영자 손정우 등 국외에서는 중범죄로 다뤄지는 디지털성범죄자들이 국내 재판에서 번번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자 터져 나온 분노의 목소리였다.

n번방 사건은 피해자가 아닌 여성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경찰청도, 법원도 평생 가볼 일 없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우주(활동명)’는 기사를 보며 “손이 덜덜 떨리는” 충격을 받았고 가해자 강력처벌 촉구 시위에 동참하기로 했다. ‘멸균’, ‘안개’, ‘뽀또’ 등 비슷한 사정의 여성들은 n번방 범죄를 완전히 끝내겠다는 의미의 비영리 임의단체 ‘eNd(엔드)’를 만들었다.

본래 시위를 하기 위한 모임이었던 eNd는 코로나 유행으로 시위가 여의치 않자 활동의 일부였던 n번방 가해자 재판 방청 활동에 전면적으로 뛰어든다. 서울, 수원 등 수도권뿐 아니라 춘천, 대구, 안동, 제주까지 전국에서 열린 재판을 찾아가 방청하면서 현장의 내용을 기록했다. <그래서 우리는 법원으로 갔다>는 n번방의 판결이 그다음 n번방의 먹이가 되는 걸 더는 지켜만 볼 수 없었던 여성들이 전국을 뛰어다니며 땀과 분노로 기록한 재판 방청 후기다.

n번방에 분노하는 사람들 소속 회원들이 지난해 5월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9번출구와 10번 출구 사이에서 강남역부터 n번방까지 성폭력 규탄 이어말하기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방청연대’라고 일컫는 이들 활동의 의미가 기록 차원만은 아니다. “내가 안 가면 아무도 재판을 지켜보지 않을까 봐, 그러면 보는 눈이 없는 사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끝나버릴까 봐 무서웠다. 그저 머릿수를 채워서 법정 안에서 판사를 압박하는 데 두 눈으로라도 도움을 보태고 싶었다.”(안개) 방청석에 앉아 머릿수를 채우는 게 판사에게 압박이 될까? eNd가 방청연대 활동에 나서는 데 큰 역할을 한 연대자D는 재판 모니터링의 중요성을 추천의 글로 남겼다. 성범죄의 피해자였던 그는 국가(원고)와 가해자(피고)만 당사자로 남는 형사 재판에서 정작 피해자는 “주변적·수동적 존재로 전락”하는 것을 경험했다. 피해자든 피해자의 연대자든 방청석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판사와 검사, 가해자와 가해자 변호인의 말을 응시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두 당사자 간의 손쉬운 타협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앞부분의 방청 후기에 이은 네 활동가의 연대기는 뭉클한 여성 연대 서사로도 읽힌다. 학업이나 직장생활에 바쁘게 살던 여성들이 n번방 사건에 한없는 절망과 무기력감을 느끼다가 “뭐라도 해야겠기에” 시위 모임을 만들어 함께 밤을 새우며 성명서를 썼다. 방청연대를 하기 위해 새벽부터 나온 법원 앞에서 처음 만난 동료와 함께 재판 기록을 하고 분노하고 재판 뒤 뜨끈한 추어탕 국물을 먹었다. 이렇듯 자신을 ‘갈아 넣으며’ n번방 일당의 재판을 찾아다닌 이유는 외려 단순했다. “나는 그저 내가 사랑하는 나의 세계와 우리의 그리고 여자들의 평화를 지키고 싶었다. 내가 믿는 정의로부터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우주)

책은 이들이 조사한 n번방 사건 주요 가해자 관계도와 판결 내용 등의 자료 외에도 디지털성범죄 대처방법과 재판 방청 가이드, 기록 양식 등을 세밀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말한다. “시스템이 피해자, 약자, 소수자를 위해 존재하도록 여성들의, 시민들의 사법감시운동은 이어질 것”이기에 “우리 살자. 악착같이 살아남자.”(연대자D)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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