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 '알바' 청춘의 서울 밤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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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고요한(사진)의 소설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은 장례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춘 남녀의 이야기다. 우리의>
"우리의 밤은 죽은 자들이 있는 장례식장에서 시작되었다"라는 문장에서 보다시피, 소설 제목은 이들이 일하는 장례식장을 가리킨다.
장례식장과 청춘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소설에 독특한 분위기를 부여한다.
비록 장례식장과 죽음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이 소설은 무엇보다 청춘 남녀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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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고요한 지음 l 나무옆의자 l 1만3000원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고요한(사진)의 소설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은 장례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춘 남녀의 이야기다. “우리의 밤은 죽은 자들이 있는 장례식장에서 시작되었다”라는 문장에서 보다시피, 소설 제목은 이들이 일하는 장례식장을 가리킨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서울 서대문의 이 장례식장에서 밤늦게까지 일한 ‘나’ 재호와 마리는 일이 끝나면 길 건너 패스트푸드점에서 새벽을 기다리거나, 광화문과 종로 일대를 하염없이 걷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남산이며 영등포며 미아리며를 쏘다니기도 한다. 인천에 사는 마리의 첫차를 기다리기 위한 것인데, 시시콜콜하게 묘사되는 이들의 밤 산책은 낮과는 다른 얼굴의 서울을 보여준다. 마리는 길에서 주운 면사포를 머리에 쓰고, 재호는 잠긴 덕수궁 정문을 두드리며 “이리 오너라” 호령하며, 두 사람이 함께 역사박물관 앞에 전시된 전차에 들어가 앉기도 한다. 낮에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밤에는 가능해진다.
실없다 못해 한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들의 행위는 무료한 시간을 때운다는 일차적 목적 이외에 다른 취지 역시 지닌다. 장례식장 아르바이트라는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아울러 매일 접해야 하는 죽음이라는 사태와의 대결 또는 화해가 그것이다. 재호와 마리가 각자 지니고 있는 개인적 상처와 고민 역시 밤 산책 과정에서 공유되며 위안과 해법을 찾기도 한다.
장례식장과 청춘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소설에 독특한 분위기를 부여한다. 죽음을 업무로서 처리하는 청년들의 일상은 죽음의 하중과 비극성을 크게 누그러뜨린다.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 모임을 운영하는 재호의 아버지, 죽음이 덜 슬프게 느껴지도록 빨간색 양복을 입고 조문을 가는 일본인 히로시 등 주변 인물들이 그에 가세한다. 재호는 어려서 죽은 누나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는 자책감을 떨치지 못하는데, 장례식장에서 숱한 죽음을 접하고 죽음에 관해 사유를 거듭하면서 서서히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을 보내주는 일을 하면서 나 역시 위로를 받”았노라는 그의 고백을 보라.
비록 장례식장과 죽음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이 소설은 무엇보다 청춘 남녀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지진으로 몸이 기우뚱한 걸 두고 “내 몸이 너를 향해 기울어졌다”고 말하는 청춘은 얼마나 사랑스럽고 풋풋한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나무옆의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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