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형벌, 반이성의 재판을 심판하라"
체사레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
볼테르 해설과 함께 출간
재판관의 편견과 무지 탄핵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체사레 베카리아 지음, 볼테르 해설, 김용준 옮김 l 이다북스 l 1만5000원
체사레 베카리아(1738~1794)의 <범죄와 형벌>(1764)은 근대 형법의 초석이 된 기념비적 저작으로 꼽힌다. 베카리아는 이 책에서 자의적인 재판, 비인간적인 고문, 가혹하고 잔인한 형벌을 탄핵하고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세움으로써 형사 사법 제도를 근대 이전과 근대 이후로 나누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저작은 18세기에 처음 출간된 직후부터 당대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의 해설문과 함께 읽혔는데, 이번에 한국어로 번역된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은 볼테르의 그 해설문을 부록으로 실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난 베카리아는 스무 살 때 파비아대학에 들어가 법학을 전공한 뒤 뜻 맞는 지식인들과 모임을 결성해 형사 사법 제도 개혁을 논의했다. 그 논의의 결과물이 26살 때인 1764년에 출간한 <범죄와 형벌>이다. 수학에 재능이 있었던 베카리아는 이 얇은 책을 수학 논문처럼 논리적이고 간결한 형식으로 썼다. 하지만 문장들 사이사이에는 비인간적이고 반지성적인 형벌 제도에 대한 의분과 인간다운 세상을 향한 휴머니즘의 열망이 짙게 배어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범죄와 형벌>을 쓰는 베카리아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이 글을 썼다는 이유로) 온 인류가 나를 경멸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인류의 권리와 불굴의 진리를 지지함으로써 폭정과 무지에 희생되는 피해자 중 단 한 명이라도 죽음의 고통에서 구해낼 수 있다면 내게는 큰 위안이 될 것이다.”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은 유럽 계몽주의 정신 속에서 잉태되고 태어난 계몽의 자식이다. 특히 계몽주의 운동의 대표자 볼테르의 <관용론>과 베카리아 저작 사이에는 직접 탯줄이 이어져 있다. 볼테르의 <관용론>은 1762년 프랑스를 뒤흔든 ‘칼라스 사건’을 고발한 책이다. 프랑스 남부 툴루즈 사람 장 칼라스는 가톨릭교도가 대다수인 곳에서 프로테스탄트교도로 살던 늙은 상인이었다. 어느 날 칼라스의 아들이 목매 자살했는데, 이 사건을 보려고 몰려든 군중 가운데 누군가가 ‘칼라스의 아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하자 가족이 아들을 죽였다’고 소리쳤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소문은 툴루즈 시민 사이에 퍼져나갔고 광신의 물결 속에서 칼라스는 체포됐다. 맹신과 편견으로 무장한 재판관들은 증거도 없이 칼라스에게 극형을 선고했다. 칼라스는 수레바퀴에 매달아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을 당했다. 이 사건을 알게 된 볼테르는 야만적인 재판과 형벌에 분노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글을 써 여론에 호소했다. 사건은 재심에 부쳐졌고 칼라스는 뒤늦게 무죄 판결을 받았다.
볼테르는 1763년 이 사건의 전말을 담은 <관용론>을 출간해 종교 박해를 규탄했고, 볼테르의 필설로 칼라스 사건은 유럽 전역의 관심을 모았다.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은 바로 그 칼라스 사건과 볼테르 저작이 일으킨 파문 가운데서 집필됐으며, 그 주장의 단호함과 논증의 명료함으로 출간 직후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볼테르의 <관용론>이 무지와 맹목으로 물든 종교적 불관용에 각별히 주목했다면, 베카리아의 책은 잔혹한 형벌과 자의적인 재판을 비판의 과녁으로 삼았다. <범죄와 형벌>이 1765년에 프랑스어로 번역되자 이듬해 볼테르는 이 책을 해설하는 글을 펴냈다. 이때부터 볼테르의 해설문이 베카리아의 책과 묶여 함께 읽히기 시작했다. 볼테르와 베카리아가 서로 바통을 넘겨주며 계몽주의 정신을 드높인 셈이다.
<범죄와 형벌>은 법의 기원과 목표를 ‘사회계약’과 ‘공리주의’라는 근대적 원리에서 찾는다. 인간이 야만 상태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기 위해 맺은 사회계약의 산물이 법이며, 이 법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 책은 몽테스키외가 제시한 ‘법의 정신’, 곧 “절대적 필요에서 비롯되지 않은 모든 형벌은 압제적이다”라는 일반 원칙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런 원칙에 따라 베카리아는 고문과 사형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고문은 유죄로 입증되지도 않은 피고인에게 육체적 고통을 안김으로써 징벌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 더구나 고문을 잘 견디는 자는 죄가 있어도 무죄 선고를 받고, 고문을 못 견디는 자는 아무 죄가 없어도 유죄를 뒤집어쓰게 된다. 그러므로 고문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고문은 야만의 악습일 뿐이다.
베카리아가 가장 긴 지면을 할애해 비판하는 것이 사형 제도다. “사형이라는 형벌은 어떤 논리로도 허용될 수 없다. 사형은 공공의 선에 필요하지 않고 유용하지 않은 파괴 행위이며 국가가 국민 한 사람을 상대로 하여 벌이는 전쟁이다.” 사형은 법을 탄생시킨 사회계약의 원리에 반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 권리를 양도하는 계약을 자발적으로 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사형은 그 효과를 놓고 보더라도 무익하고 무용하다. 형벌이 잔혹해진다고 해서 범죄 예방 효과가 더 커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형벌이 잔인해질수록 인간의 정신은 완강해지고 둔감해진다. 과도한 형벌은 압제이고 폭정일 뿐이다. 베카리아는 사형의 대안으로 종신노역형을 제시한다. “종신노역형은 사형 못지않게 범죄를 의도하는 자를 제지하는 데 필요한 엄격함을 갖추고 있다.”
이 책에서 베카리아는 ‘장 칼라스 사건’을 염두에 둔 듯 재판관의 자의적인 판결을 다음과 같이 강력한 목소리로 비판한다.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범죄가 가장 설득력이 약하고 가장 모호한 증거, 심지어는 추측으로 입증됐다. 진실을 묻지 않고 범죄를 입증하는 것이 법과 판사의 중대사라도 되는 양, 아무렇지 않게 결백한 사람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어떤 법관도 법에서 정하지 않은 형벌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내려서는 안 되며, 어떤 재판도 공익을 핑계로 삼아 법이 정한 선을 넘어서는 형벌을 주어서는 안 된다. 베카리아는 가혹한 형벌은 계몽 이성과 박애 정신에 어긋나며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고 사회적 합의에도 반한다고 말한다. 법을 다루는 자들의 편견과 자의로 법과 법정이 어지럽혀지는 것이 베카리아 시대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법의 정신이 훼손당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베카리아의 원칙은 여전히 호소력을 발휘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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