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이 물릴 때 들춰보는 '오른손'의 비밀
대학 강의하듯 양자역학 세계로
"과학은 모르는 걸 깨닫게 해줘"
왼손잡이 우주
대칭부터 끈이론까지, 현대 물리학으로 왼쪽/오른쪽 구별하기
최강신 지음 l 동아시아 l 1만6000원
‘물리’라는 영어단어 피직스(Physics)는 ‘자연’(physis, 피시스)을 뜻하는 그리스어를 어원 삼는다. 자연의 본성이나 상호작용하는 사물의 이치가 물리(物理)다. 고대 철학과 함께 시작된 이유고 근대 독립학문으로 분리된 이후로도 결결이 태도가 겹친다. 당연하던 것이 당돌해 보일 때, 이치란 곧 눈치에서 시작된다는 것처럼. 왜 사과가 떨어지지? 어, 욕조물이 넘치네?
자연법칙을 끝없이 회의하고 이치를 따졌더니, 비로소 자연의 명리에 닿는다. ‘자연’을 좀 더 넓혀보자. 이론물리학자 최강신 교수(이화여대)의 각본은 이렇다.
외계 생명체에 어떤 필요로 오른손을 알려줘야 한다. 그와 나 사이 공통으로 알고 있는 기준(비대칭 구조물)은 없다. 영미권에선 엄지·검지를 편 두 손 중 알파벳 L(엘) 모양 쪽을 왼쪽(Left, 레프트) 손으로 구별해준다. 나머지가 오른손이다. 참고하도록 해본다.
외계인: 나는 그 글자를 몰라. 그 L(엘)이라는 모양을 설명해 줘.
지구인: 먼저 선분을 그리고 세로로 세워봐.
외계인: 응. (‘l’을 그리고 세운다.)
지구인: 그다음 이 선분 아래쪽에 짧은 획을 붙이는데, 오른쪽으로 뻗어 나가도록 붙이면 돼.
외계인: 잠깐만, 오른쪽? 우리 오른쪽이 어떻게 정의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었잖아.
그렇다, 24억년 뒤 태양계와 충돌해 합쳐지기 시작한다는 안드로메다은하에 사는 누군가에게 만나지 않고선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시킬 방도가 없다. 방향은 기준, 질서, 예고이므로, 그들의 지식도 우리가 수용하는 데 한계가 크리라. 세계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의 원리에 서로 닿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다.
<왼손잡이 우주>는 이 한계를 과제 삼아 현대물리학의 알짬을, 그러나 대학의 물리학도들이 감당해야 할 깊이로까지 독자에게 안내해보고자 한다. 최 교수의 각본이나 구성에서 보듯, 수년 사이 부쩍 잦아진 ‘물리 대중화’의 시도이다.
우주의 원리는 많겠으나 근원 두가지만 꼽아본다. 첫번째, 해파리도 원자고, 나비, 꽃, 인간도, 우주도 원자로 이뤄져 있다. 지구상 모든 원자들은 우주에서 왔다. 원자는 다들 작은 자석이다. 원자 속 전자가 회전하며 자기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영역이다. 앞선 17세기의 발견인바, 학자들에게 지구는 이미 거대한 자석이었다. 지구 북극이 자석 S(에스)극이다. 그로부터 자석이 전류가 흐르는 곳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외르스테드 법칙)을 발견하기까지 220년이 걸렸다. 그 ‘대칭’이 더 강력하다. 자석을 움직이니 전류가 발생한단 사실. 이는 2022년 현재까지도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전기와 자기의 상호·대칭적 관계(함께 이르길 ‘전자기력’)를 방정식으로 정립한 이가 맥스웰이다.
둘째, 빅뱅 후 생성된 우주의 모든 에너지는 저 홀로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 공간, 방향(회전)을 달리해도 외력이 없는 한 본래의 성질이 유지된다. 대칭성이다. 거울대칭도 마찬가지다. 자석의 N(엔)극에서 일어나는 일이 거울에서의 (보기에) S극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오른쪽에서 일어나는 일은 왼쪽에서도 일어난다는 게 물리학의 믿음이다. ‘ㅏ’를 가로축으로 뒤집고(ㅓ, 거울상), 세로축으로 또 뒤집으면 ㅏ를 회전시킨 ㅗ다. 이런 관계를, 홀수를 두번 더하면 본래의 홀짝으로 돌아가는, 홀짝성(parity) 대칭이라 부른다. “대칭이 빠진 물리학은 아무것도 아니다”(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필립 앤더슨) 말할 정도로 물리학은 ‘대칭’을 신격화한다. 목도되는 자연에서 대칭은 말 그대로 자연스럽고, 강한 탓이다.
그리고 1956년 그 ‘신앙’이 무너진다. 양성자, 중성자, 전자의 조합인 원자는 붕괴되면 전자 등이 이탈하며 다른 원자로 변한다. 태양이 빛을 발하는 과정이다. 여기서도 대칭은 본원적이다. 하지만 그해 실험 결과, ‘코발트-60’이란 원자가 붕괴해 니켈-60으로 변화(약한 상호작용에 의한 베타붕괴)할 때 전자가 -코발트도 자석이므로- N, S극에서 동일하게 튀어나가는 게 아니라 한쪽으로 더 많이 나갔다. S극 방향으로, 좌우가 자연에 의해 구분(차별)지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는 중성미자가 날아갈 때의 자전 방향(왼쪽)과 관련해, 물리학자들이 우주를 왼손 편이라 비유하는 계기가 됐다.
자연계의 이 불완전한 대칭성을 놓고 ‘엄지척’ 오른손의 엄지 방향을 전류, 남은 손가락을 자기장 방향에 맞춘 플레밍의 오른손 법칙을 적용해 우리는 외계에 오른손을 비로소 알려줄 수 있다. 만일 외계에서도 중성미자를 관찰할 수 있다면, 더 간단히 중성미자의 진행 방향에 왼손 엄지를, 나머지 손가락으로 자전 방향에 일치시키며 왼손을 알려줘도 되겠다.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최 교수는 전하의 종류, 반입자의 의미, 4차원에서의 대칭성 등을 포석처럼 짚어간다. 전부 학생들에게 강의한 내용이다.
책은 저자가 밝히고 있듯, 미국의 과학자 이름을 담은 <마틴 가드너의 양손잡이 자연세계>(까치, 1993)에 빚지고 있다. 2021년 ‘마음의 부력’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은 작가 이승우가 자선대표작으로 실은 ‘부재증명’ 역시 출발점 삼았다던 책이다. 성폭행 혐의로 체포되고 피해자, 친척, 지인 등 주변인들이 ‘나’에게 하나같이 불리한 증언을 하는 가운데, 범행지역에 가보지도 않은 나는 그들이 구성하는 나가 내가 인식하는 나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지 회의하게 된다. 말하자면 그들이 말하는 오른손과 나의 오른손은 왜 다른가와 같은 철학적 사유로, 현상과 인식, 주관적-객관적 존재의 대칭이 무너진 불안(완)전 세계에, 지천으로 대칭이라 안도하고 아름답다 말하는 물리가 기여하지 못할 까닭이 없겠다.
책은 그밖의 여러 참고서적과 글을 ‘조교’로 필요로 한다. 단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깊이의 안내를 수락하는 이유는 이런 말 때문이다. “과학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쌓이는 과정을 비판하는 행동”이란.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게 할 의지를 준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그림 동아시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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