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시간, 생명의 시간

한겨레 2022. 5. 13. 05: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매일 출근하고 정치 뉴스를 보고 퇴근하고 잠들고 '이러다가는 아무 새로운 생각도 할 수 없겠는걸!' 싶어서 뭐든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것을 한 줄씩 메모하기 시작했다.

이런 두 개의 시간 감각(일상의 시간, 생명의 시간)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책 중 하나는 홋카이도의 수의사 다케타즈 미노루의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다.

이 수의사의 한 해는 4월에 시작한다.

게다가 그의 진료소 새해 첫 업무는 새끼 바다표범 기르기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Book]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다케타즈 미노루 지음, 김창원 옮김 l 진선북스(2022)

매일 출근하고 정치 뉴스를 보고 퇴근하고 잠들고 ‘이러다가는 아무 새로운 생각도 할 수 없겠는걸!’ 싶어서 뭐든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것을 한 줄씩 메모하기 시작했다. 2월에는 제주 거문오름에서 노랑 복수초를 봤다. 3월 말의 강원도에서는 감자 씨 뿌리는 것과 두릅 새순을 봤다. 곡성에서 보라색 얼레지꽃도 처음 봤다. 4월의 장흥에서 물총새 파란색을 처음으로 봤다. 믿을 수 없이 예뻤다. 몇 년 동안 보고 싶었던 새를 마침내 봤다는 것만으로도 구름 위를 나는 기분이었는데 단지 물총새 한 마리를 본 것이 아니다. 수컷 물총새가 입에 물고기를 물고 작은 나뭇가지에서 암컷에게 구애 행동을 하는 것을 봤다. 이 사실을 새를 좋아하는 분에게 말했더니 “정말 보기 힘든 귀한 것을 봤다”고 부러워했다. 내 몸 위로 일상의 시간이 흐르고 그와는 다른 아주 오래된 생명의 시간이 아득하게 흐르는 것만 같았다.

이런 두 개의 시간 감각(일상의 시간, 생명의 시간)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책 중 하나는 홋카이도의 수의사 다케타즈 미노루의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다. 이 수의사의 한 해는 4월에 시작한다. 게다가 그의 진료소 새해 첫 업무는 새끼 바다표범 기르기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오호츠크해에 사는 바다표범에게 아무르강에서 흘러 내려온 유빙은 요람이다. 4월에 바다표범들이 유빙 위에 아기를 낳는다. 그 무렵 저기압이 북상하면 비바람이 바다를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바로 이런 다음 날 “선생님, 큰일났어요” 하고 마을 사람들이 골판지를 안고 찾아온다. 골판지 안에는 모래와 바닷물로 뒤범벅된 후줄근한 몰골의 생물이 유리구슬 같은 눈으로 “미야~” 하고 울며 수의사를 바라본다. 새끼 바다표범이다. 비바람에 새끼가 어미와 떨어져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그 결과로 이 수의사는 몇 달 동안은 바다표범을 길러야 한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왜 한 해의 시작이 4월일까? 1월까지 다 읽고서야 이해했다. 1월에 유빙이 홋카이도에 도착한다. 홋카이도 사람들은 유빙이 도착해야 진짜 겨울이 시작된다고 믿으니 1월은 진짜 겨울이 시작하는 달인 셈이다. 4월은 잠시 머물렀던 유빙이 떠나는 달이다. 4월 홋카이도를 떠나기 직전의 유빙은 어떤 모습일까? 해가 지고 냉기가 돌면 파도에 흔들리는 작은 유빙들은 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어간다.

“청자색의 크고 작은 얼음덩어리가 해안을 메우고 있었다. 사파이어의 바닷가였다. 바다는 남아 있는 하늘의 햇빛을 빨아들여 봄의 마지막 하루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유빙 하나하나가 북쪽 바닷가의 사파이어가 되어—이것이 그해 유빙의 마지막 빛이었다.”

사파이어 유빙이 가고 나면 복수초 피고 산나물의 계절이 시작된다. 머위 새순, 갯방풍, 산마늘, 두릅, 쑥… 그리고 농부들의 밭갈이가 시작되고 여름 철새들이 날아오고… 이렇게 한 해가 시작된다. 우리는 계속 시작의 연쇄고리를 살아내는 셈이다. 시간이 모든 생명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새삼 신비롭게 느껴진다. 이 책은 우리에게 계절을 찾아줄 뿐만 아니라 다른 엄청난 역할도 한다. “선생님, 큰일났어요!” 하고 새끼 바다표범뿐 아니라 여우, 물오리, 큰고니 등 이름 모를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달려오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어떻게 이 세상을 사랑할까?’라는 질문에 답이 되는 책이다.

<CBS>(시비에스) 피디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