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이 땅의 ‘고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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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아, 잘 지냈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K의 모습은 10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일말의 어색함도 없이 우리는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그동안의 세월을 나누었다.
K는 2008년 무렵 같은 소속사에서 함께 배우로 활동하던 두 살 위 선배다. 몇 년 뒤 나는 오랜 꿈이었던 뮤지션이 되기 위해 회사를 나왔고, K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지금은 꽤 유명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중요한 배역을 맡아 조금씩 이름을 알려나가고 있다.
분야는 다르지만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꾸준하게 한길을 걸어온 우리는 묘한 전우애를 느꼈다. 바늘구멍 같은 불빛 하나에 의지해 한 걸음씩 걸어 나가며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섰을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었을 것이다. ‘잘 가고 있는 걸까?’
안타까운 얘기지만 나는 아직 속 시원히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얼마 전 또다시 새 앨범을 발매하고 말았다. 어쨌든 아직은 그 길 위에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날 밤늦게까지 우리는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난스럽고도 감사한 일인지 이야기 나눴던 것 같다.
동시에 나는 ‘고인물’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본래 말 뜻은 ‘변화가 없다’는 부정적인 뜻이지만, 요새는 직업이건 취미건 한 우물을 오래 파온 특정 분야의 ‘고수’에게도 이 말이 붙는다. 나는 그 말에서 특유의 고집을 느꼈다. 정체돼 있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끝없는 의심과 우려를 뒤로한 채, 기어코 이 자리에서 샘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집념 같은 것 말이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고집은 유연함을 유독 강조하는 요즘 세상에서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운 좋게 샘물을 발견한다 쳐도 언제가 될지는 기약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수많은 이 땅의 ‘고인물’들은 묵묵히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갈 것이다.
온 세상을 경악하게 했던 팬데믹조차도 꺾지 못한 그들의 이유 있는 고집이 훗날 바다를 만들어내는 기적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내 우물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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