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의뭉스러운 그녀
[경향신문]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의원을 찾아갔다. 늘 한가한 편이어서 오래 기다림이 없어 부담 없이 들를 만한 곳이었다. 가끔 편두통이나 소화불량으로 찾아가지만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기도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일렬로 된 의자 서너 개가 놓여 있고, 오른쪽 벽에 붙은 카운터 안에 그녀가 앉아 있다. 그녀는 낮은 의자에 앉아서 들어오는 손님에게 엷은 미소를 던진다. 평범한 옷에 약간 볼륨이 있는 머리를 한 중년 여성이다. “어디가 아프신가?” 하고 물어보는 얼굴에 진지함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좀 가볍게 보면서 지나쳤다.
얼마 전 코로나를 앓고 나니 숨이 답답하고 걷기도 힘들어서 수액주사라도 한번 맞아볼까 하고 찾아갔다. 그날도 손님은 없고 그녀 혼자서 무료하게 앉아 있었다. “좀 앉아서 기다리슈. 2시에 진료가 시작돼요” 하면서 웃는다. 시계를 보니 한 시 반이었다. 의사의 진찰이 끝나고 침대에서 대기하고 있자니 그녀가 비닐 가운을 걸치고 주사기를 들고 들어왔다. 그때서야 그녀가 간호사임을 깨닫게 되었다.
내 혈관은 가는 데다가 살 속에 묻혀 있어서 웬만한 베테랑이 아니면 찾지 못하고 손목에다 겨우 놓게 된다. 두 시간 이상 손목에 맞고 있으면 몹시 아프다. 그녀는 왼쪽 팔에 주사기를 가볍게 밀어 넣다가 아, 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드러낸다. 미세한 혈관을 찾다가 놓친 것이다. 이번에는 오른쪽 팔을 내밀었더니 단번에 성공한다. “아, 선생님, 대단하세요.” 감탄이 절로 나왔다. 혈관이 약하니 더디게 들어가는 수액 방울을 바라보면서 지루한 시간을 견디고 나오니 그녀는 접수처에서 다른 환자에게 예의 미소를 띠며 앉아 있었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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