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을 믿습니까".. 그 말 뒤 진짜 마법이 시작됐다
아빠가 남긴 건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빚쟁이뿐. 엄마는 오래전 어린 동생과 그를 버리고 떠났다. 학교에선 가난을 조롱하는 친구들과 편협한 교사들이 ‘윤아이’(최성은)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집주인 월세 독촉에 새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편의점 주인 아저씨는 월급 가불을 부탁받고 인심 쓰는 척하더니 못된 짓을 하려 든다. 그때 ‘아이’의 시궁창 같은 현실 속으로, 버려진 유원지에서 산다는 마술사 ‘리을’(지창욱)이 걸어 들어와 묻는다. “당신, 마술을 믿습니까?” 그리고, 진짜 마술이 시작된다.
지난 6일 처음 공개된 ‘안나라수마나라’가 넷플릭스 시리즈 세계 4위(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오르며 차근차근 흥행 궤도를 타고 있다. 2010년대 초 웹툰으로 큰 인기를 누린 하일권 작가의 동명 원작을 ‘구르믈 그린 달빛’ ‘이태원클라쓰’의 김성윤 감독이 연출했다.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보기 드물었던 뮤지컬 형식을 차용한 음악극이다. 원작에서 ‘아이’가 처한 현실은 흑백 모노톤, 리을이 펼쳐 보이는 판타지는 컬러였다. 드라마는 색색 조명으로 만든 빛과 그림자 위에 도드라지는 색채를 더해 더 화려한 컬러로 마법의 세계를 그려낸다. 만화책 페이지를 찢고 나온 것 같은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가 환상과 현실의 이음새를 매만져 연결한다.
‘라라랜드’가 떠오르는 1화 오프닝 시퀀스에선 배우 수십 명이 학교 벽에 직각으로 서서 춤추며 노래한다. 마술사가 지친 아이를 위로하며 유원지에 마법을 걸 땐 대관람차 앞에서 형형색색 불꽃이 터지고, 엄마와 나눈 추억이 담긴 회전목마를 타면 목마들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부모의 강요로 원치 않는 경쟁에 내몰렸던 마음을 짚어주는 ‘아스팔트의 저주’ 시퀀스도 이전에 볼 수 없던 규모. 넷플릭스의 자본력과 한국 창작자들의 상상력이 좀비, 로맨스, 법정극 등으로 보폭을 넓혀온 한국 드라마의 지평을 또 한번 확대했다.
학교에서부터 돈에 찌들고 휘둘리는 아이들의 현실, 실종과 살인 사건 와중에도 꿋꿋한 우정과 풋풋한 연애 감정까지 대중적 요소도 영리하게 버무렸다. 이 드라마에서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지겨운 가난도, 악의와 오해도 아닌 형편없는 어른들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라는 게 아니야. 네가 하기 싫은 걸 하는 만큼, 하고 싶은 일도 하라는 거야.” 지창욱이 연기한 마술사 ‘리을’은 ‘꿈을 가지라’는 원작의 이상적 충고보다 좀 더 현실 가까이 내려와 있다. 원작보다 조금 더 장난기 있는 소년 같은 분위기지만 격렬한 감정 표현엔 한층 더 어두워진다. 더 현실적인 ‘리을’이다. 주인공 ‘아이’를 연기한 최성은은 큰 눈 속에 금세 굴러떨어질 듯한 눈물을 가득 담은 듯 보인다. 그가 빚어내는 처연하고 안쓰러운 정서가 지창욱의 리을과 보색대비처럼 잘 어울려 극의 정서적 완성도를 높인다. 시청자의 몰입감이 유지되는 건 이 두 배우의 조화로운 연기 덕이 크다.
마지막 6화까지 보고 나면, 진짜 뮤지컬 공연의 커튼콜 같은 엔딩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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