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내로남불 비판, 부메랑 되나

임민혁 정치부 차장 2022. 5. 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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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12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첫 임시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문재인 청와대에서 대변인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기어코 피 맛을 보려는 무리에게 너무 쉽게 살점을 뜯어내 주고 있다”는 섬뜩한 글을 올렸다. 한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낙마한 직후였다. 일부 의혹 제기가 무리하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적개심이 느껴진다. 본연의 역할에 따라 공직자를 검증하는 야당과 언론을 사람이 아닌 짐승 취급했다.

이 의원은 지난해 말부터는 윤석열 대통령 가족과 관련한 각종 의혹 제기에 앞장섰다. 그 과정에서 명백하게 팩트가 틀린 것들이 드러나 공개 사과를 하기도 했다. 요즘은 총리 후보자 주(主)공격수를 맡고 있다. 이 의원과 동료들의 최근 청문회 공세는 공직자 검증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피 맛에 굶주렸기 때문일까.

민주당이 2020년 총선에서 압승한 뒤 한 민주당 의원이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야당이) 행정부를 견제하고 제어하는 역할을 국회에서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고 비난한 적도 있다. 국회의 행정부 견제는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 의무다. 그런데 정부 견제 목적으로 소수당이 법사위원장을 갖는 관례에 따라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요구하자 여당이 거부하며 ‘강박’ 운운했다.

2년이 지나 여야 교체를 앞둔 지난주 다른 민주당 의원이 똑같은 프로에 나왔다. 그는 법사위원장을 내줄 수 없다며 “전통적으로 야당이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 법사위원장을 맡아 왔다”고 했다. 내가 법사위원장 하면 ‘정부 견제’이고, 네가 법사위원장 하면 ‘반대를 위한 반대’ ‘강박적 발목잡기’가 된다.

지난 5년간 우리 국민은 집권 세력의 이런 이중잣대를 신물 나도록 봐야 했다. 사례를 들자면 한이 없다. 내 편이냐 네 편이냐가 가장 중요했고, 나에게는 봄바람처럼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가을서리보다 더 엄격했다. ’Naeronambul(내로남불)’은 국제어가 됐다. 상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현 여당은 이런 문 정권 이중잣대·내로남불의 가장 큰 수혜자였다. 워낙 다채로워 공격거리가 마르질 않았다. 본인들의 흠도 적지 않았지만, ‘내로남불의 결정체’ 같은 정권 핵심 인사의 아우라 덕분에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정권이 교체됨에 따라 공수(攻守)가 바뀌었다. 현 여권이 5년 동안 민주당을 공격한 기준과 논리는 그대로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그만큼 본인들에게 더 엄격하고 일관성을 지켜야 하지만, 일부 인사에서 불거진 의혹을 보면 과연 그런 경각심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벌써부터 “문 정부와 뭐가 다른가”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의혹을 감싸는 과정에서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여당 지도부는 장관 후보자의 자식 ‘스펙 쌓기’ 대해 “빈부 격차가 엄연히 존재하고, 부모의 재력에 따라 교육받는 수준에 차이가 나는 것이 결격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조국 사태 때 민주당 전 의원이 “초엘리트들은 서민이 갖지 못한 인간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 자식들은 굳이 불법·편법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해 청년들을 분노케 한 말을 연상시킨다.

내로남불을 원천 차단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잘못이 드러났을 때 인정하고 부끄러워하고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국민은 기대한다.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전 정권 사람들은 그럴 때 되레 “우리에겐 그런 유전자가 없다”고 억지를 부리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도 안되면 “저쪽이 더 심하다”고 물타기를 했다. 이 지긋지긋한 내로남불의 악순환을 윤석열 정부는 조금이라도 끊어낼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해 ‘정치판은 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된다면 너무 암울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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