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의 책·읽·기] 책장 사이 부는 바람 흙의 감수성 깨운다

김진형 2022. 5. 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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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출신 최성각 작가 산문집
청소년 시절·환경운동 기록 등
생명평화 메시지 청춘에 전달
태백 탄광 르포·고 이외수 회고
본지 기고 캠프페이지 칼럼 수록
▲ 양구 펀치볼둘레길에 있는 부부 소나무 모습. 본사DB


글에서 상쾌한 바람이 느껴진다. 단숨에 책장을 넘기기 보다는 초여름 오두막에 누워 느릿하게 읽고 싶어진다.

‘불량청소년’이었던 시절의 방황부터 ‘어쩌다’ 환경운동하는 작가가 되기까지 삶이 묻어난 문장에는 진실성이 담겨있다. 산천이 말하는 소리가 들릴듯 하다가도 이내 파괴되는 자연 속에서 애도해야 할 존재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어느새인가 소설보다는 산문을 통해 문학과 삶의 일치를 그려온 강릉 출신 최성각 작가의 글이 그렇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생각보다 덜 중요한 존재였다는 인식 또한 머리속을 되뇌이게 만든다.

산문집 ‘나무가 있던 하늘’을 읽다 보면 사람 최성각의 삶이 보인다. 책 제목은 작가의 삶에 큰 영향을 줬던 헨리 데이빗 소로의 글에서 착안했다. 소나무가 베어지면, 나무가 차지하고 있던 하늘은 200년간 빈 공간으로 남는다. 하지만 누구도 조종을 울리지 않고 계속해서 나무를 벤다. 이 ‘나무’는 비단 숲속의 나무 뿐만 아니라 자연의 모든 생명체이기도 하다.

2019년 대한민국예술원 문제를 다룬 ‘폴라니 가족의 식탁’은 이번 산문집의 제목으로 고민했던 글이다. 오스트리아 에코노미스트지의 부편집장였던 칼 폴라니의 집에 초대받은 젊은 시절의 피터 드러커는 반쯤 익힌 감자밖에 없는 가난한 식탁에 놀라고 만다. 이들 가족은 폴라니의 월급 전액을 헝가리의 전쟁 난민을 위해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액의 임금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만, “민초들의 눈물과 신음소리는 그친 적이 없다”는 작가의 마음가짐은 2021년 후배 이기호 소설가로 이어져 공론화됐다.

최성각 작가는 춘천 서면 툇골의 책더미 속 스승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새로운 형태의 글을 쓰고 있는 듯 하다. 오랜 시간 ‘생명평화’를 주창해 온 삶도 배어 있다. 그의 산문은 시, 소설이라는 건축물이 조립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톱밥이 아니다. 당대 사람살이의 이야기다. 하늘을 두려워하고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고향 어른들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 나무가 있던 하늘 최성각


책에는 청춘들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도 들어있다. 젊음은 할 수 있는 한 열렬히,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 또한 불덩이같은 마음으로 인해 밤새도록 비를 맞았던 시절이 있었다.

“젊은이들은 모름지기 손에 흙을 묻히는 일을 사양하지 말기 바란다”며 “몸을 움직이는 것을 경시하는 어떤 지성의 성취도 나는 믿지 않는다”는 표현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든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 고 이외수 작가에 대한 회고도 있다. 이 작가는 지난 2003년 소프라노 이윤아를 초청해 시각장애인과 맹인안내견을 위한 음악회를 열었다. “머리는 총명하나 잔머리는 발달하지 못한 외수 형”이 기획한 그 음악회의 제목은 ‘귀로 본다’였고, 소프라노 이윤아 또한 충격과 감동의 기운을 받았다고 한다.

2011년 강원도민일보에 실었던 기고도 책에 실렸다. 춘천 캠프페이지 방사능 오염 문제를 꼬집었던 글이다. 2020년에도 캠프페이지 부지에서 기름통이 무더기로 발견되고 부실정화 의혹이 있었던 만큼, 그의 문제 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 글이 포함된 그의 산문집 ‘달려라 냇물아’는 2011년 공군이 발표한 불온서적 목록에 포함됐었다고 한다. ‘검은 분노의 땅: 1987년 태백탄전의 뜨거운 8월’은 ‘제2의 사북사태’로 번질지도 모르던 태백 탄광촌에서 일어난 노사분규를 생생하게 취재한 결과물이다.

생태주의적인 세계관을 견지한 작가는 ‘경제성장’만을 고집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배부른 소리가 될 수도 있지만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기후위기의 갈림길에서 자유로운 사람 또한 아무도 없다. 나무가 베어진 빈 하늘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흙의 감수성을 되찾아야 할 때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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