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돈선의 예술인 탐방지도 -비밀의 방] 49. 북 치는 소년,함섭 화가

김진형 2022. 5. 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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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대신 북소리·붓놀림에 취해… 한지 위 오방색 심장이 뛴다
1990년대 ‘흑백’ 한지서 ‘오방색’으로 파격적 변화
한국화이면서 여백이 없는, 꽉 찬 구도의 색감
숨거나 드러나면서 무한히 반복되는 함섭의 화법
유럽·미국인들 시선 끌며 해외 아트페어 완판 행렬
술로 견뎌온 예술노동,현재 건강문제로 작은작품에 집중
▲ 오방색을 입힌 함섭 작가의 작품

북소리가 들린다. 아니, 북소리가 온다.

5월의 금병산은 온통 연둣빛이다. 그 연둣빛을 더욱 짙게 하는 북소리는 김종삼 시인의 ‘북 치는 소년’을 떠올리게 한다.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북소리는 그렇게 시와 함께 온다.

금병산 자락, 산국농장엔 예술촌이 들어섰다. ‘문학의 뜰’이란 이름의 전상국 문학관이 세워지고, 민화 초충도를 그리는 화가가 있고, 공예미술가가 자기를 빚어 굽는 공방이 있다.

생물학 박사가 꽃을 심어 가꾸는 집이 있고, 언덕에 아담하게 서 있는 집 한 채. 매일 매일 주황빛 석양에 물드는 국문학자의 집이 있다.

이 마을을 사람들은 예술의 마을이라 부른다. 농장의 주인은 머리가 하얗게 센 시인 농부인데, 아침저녁으로 성모마리아상 앞에다 들꽃을 놓고 기도한다. 하루의 해는 그렇게 금병산에서 뜨고 삼악산으로 진다.

함섭 화가의 스튜디오는 휘어진 오솔길 모퉁이에 있다. 현관을 들어서니 북소리가 더욱 가슴을 쿵쿵 울린다. 현관 앞에 꽃바구니가 다소곳이 놓여 있다. 쾌유를 비는 가수 최진희의 리본 글에 간절함이 담겨 있다.

▲ 함섭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북을 치고 있다.

함섭 한지화가의 스튜디오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곳. 그곳 도예공방에서 작업을 하는 제자 김윤선은, 북소리를 들으면 그저 기쁘고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고 한다. ‘선생님이 오셨구나. 오늘도 변함없이 작업을 하시는구나.’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고 한다.

작년 함섭 화가는 간암 판정을 받았다. 팔순에 접어든 함섭 화가는 건강에 늘 자신 있어 했다. 점심에 반주로 소주 한 병을 거뜬히 비우곤 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애주가였다. 술은 그의 생과 늘 함께하는 반려자였다. 술 한 잔이 에너지가 되어 오랜 시간 힘든 예술노동을 견뎌왔다.

그러나 술은 간에 침투하여 골을 깊이 팠다. 그 실핏줄 같은 긴 강이 간을 파고들었다. 몸을 열었을 때, 칼을 댈 수가 없었다. 다시 덮었다.

“간 구경 한번 잘했지, 뭐.”

아침 햇살이 환히 스며드는 창가, 고요히 앉아있는 함섭 화가의 혈색은 복숭앗빛이다. 그는 차분한 어조로 담담히 말한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 듯한 그의 모습에선 잠재된 화가의 예지가 번득인다.

“북은 왜 치세요?”

“.......”

대답이 없다. 침묵엔 어쩌면 ‘그냥’이란 소리가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이란 뜻엔 신바람이 난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는 건 아닐까.

‘그림이 잘 되니까.’

그렇게 화가는 말하는 것 같다. 신명이다. 그 신명은 한국인의 정신적 바탕이라고 함섭 화가는 늘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한지를 물에 적셔 두드리고, 솔질하고, 그 위에 덧대고 다시 두드리고, 그것에 한국의 빛깔인 오방색을 입힌다. 그 밖에도 고서적을 찢어 바르는 일을 쉴 새 없이 반복한다. 문자가 나타나고 문자가 지워지고 하는, 이 무한정의 작업을 통해 생명의 결이 흐르듯 선과 면이 자연스레 나타난다. 마치 태고의 소리가 우주 저쪽에서 별처럼 쏟아지는 느낌이다.

90년대 방배동 지하 화실에서 그는 한지를 썼으나 거의 흑백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함섭은 과감히 오방색을 썼다. 주위에선 한지의 특성을 모르는 짓이라며 그의 작업을 폄하하곤 했다. 박영덕 화랑 전속작가가 되고부터 함섭의 작업은 파격적으로 변모했다. 스며듦과 배어남이 전체 화면을 물들이면서 깊은 내면의 정서가 은은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 오방색을 입힌 함섭 작가의 작품

그러나 국내에선 시큰둥한 반응뿐이었다. 당시 한지 작업은 거의 무채색이었고, 색채를 써도 하나같이 단색만을 썼다. 오방색을 한지에 물들이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던 때였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놀라운 일은 국내에서가 아닌, 해외에서 일어났다. 한지의 물성을 이용한 그의 비구상은, 독특한 형태의 색감으로 유럽인들에게 다가갔다. 한국화이면서 여백이 없는, 꽉 찬 구도의 색감은 그들을 깊이 매료시켰다. 의도하지 않은, 무념 무아의 이 비구상에 유럽인과 미국인들은 경이와 탄식으로 그를 맞이했다.

닥나무껍질, 천, 실의 콜라주는 거친 질감을 드러내며 한국인의 심성과 한국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철학적 색채를 담아냈다. 숨거나 드러나면서 무한히 반복되는 함섭의 화법은, 오랜 역사의 이야기가 함축된 숨은 신화를 창조해냈다.

“함섭의 화면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성의 진행이다.”라고 오광수 평론가는 말했다.

1993년 4월, ‘뉴욕 아트 엑스포’에서 함섭 작가가 가져간 6점 모두가 완판된 것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3대 아트페어인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프랑스 파리 ‘피악’ 아트페어·미국 시카고 아트페어에서 모두 완판되는 기염을 토했다. 함섭 작가는, 막말로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로부터 프랑스, 독일, 벨기에, 스페인, 미국 등 아트페어에서 함섭의 작품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함섭 작품을 상시 판매하는 갤러리가 여러 곳에서 생겨났다.

스페인 아트페어에서의 일이다. 마르쉐 재단 이사장이 작품을 구매한 후, 한 시간 만에 작품 모두가 판매되었고, 록펠러의 증손자인 데이비드 록펠러 주니어 부부는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구입한 뒤, 직접 춘천 실레마을 스튜디오를 방문하여 작업실과 수장고를 둘러보기도 했다. 그들 부부는 함섭의 꾸준한 고객이 되어 지금까지 우의를 다져오고 있다. 뉴욕 근현대미술관 moma를 세워 운영하는 록펠러 가문은 세계적인 미술컬렉터이다. 그 후 한국화를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게 한 공로를 인정받아, 함섭은 2013년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 함섭 작가의 한지 작업물

함섭 작품은 200호 한 점에 1억이 넘는다. 대부분 큰 그림들이다. 그러나 요즘엔 작은 화면에 집중해 있다. 건강 때문이다. 수술이 불가한 그는 미국 신약을 처방받았다. 신약이어서 보험이 안 되었다. 주사 한 대 맞는데 500만 원이 들었다. 다행히 미국 갤러리에서 작품이 꾸준히 판매되는 덕분에 약값은 걱정 없이 대고 있다. 13번의 주사를 맞았다. 앞으로 대여 섯 번 더 맞아야 한다. 함섭은 작품이 그를 살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동안 많은 차도가 있었다. 처음엔 어지럽고 지난 기억들이 잘 나지 않았다. 절망적인 생각이 함섭을 지배했다. 하지만 지금은 건강이 회복되고 있음을 느낀다. 하나하나 작품을 하는 과정이 즐거워지기 시작하고, 힘을 얻는다. 생명의 에너지가 소생하는 힘이다. 5월의 신록처럼 그는 새로운 생의 작업을 꿈꾼다.

“술 드시고 싶지 않으세요?”

물으니, 함섭 작가는 빙그레 웃을 뿐이다. 아마 작품을 하면서 그는 새로이 ‘작품 속에서 취하는 법’을 알게 된 건 아닐까.

함섭의 강인한 체력과 정신은 굽힘이 없는 듯하다. 동적이면서 정적인 그의 몸과 정신의 조화는, 작은아버지인 마라톤 선수 함기용을 닮은 듯싶다.

함섭. 그는 북 치는 소년이다. 언제나 마음이 푸르른 소년. 그의 북소리엔 금병산의 내면이 깊이 스며있다. 함섭의 심장에선 신명 나는 북이 계속 울려 퍼진다. 시인·춘천문화재단 이사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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