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 김선생]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되살아난 나폴리의 아름다운 전통 '커피 달아두기'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2. 5. 1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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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처럼 바(bar)에 서서 마시는 에스프레소를 유행시킨 '리사르커피' 청담점./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커피 달아두기’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카페에서 유행이랍니다.

카페를 찾은 손님이 커피 한 잔을 마시고는 2잔어치의 돈을 지불합니다. 카페를 찾는 우크라이나군 장병이면 누구나 커피나 케이크 같은 간식을 무료로 먹을 수 있지요. 이렇게 장병이 먹을 커피나 간식을 위해 미리 돈을 지불해 놓는 일이 커피 달아두기입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장병들에게 ‘감사하다’ ‘힘내라’는 의미라는데, 참 멋지죠? 말로 하거나 글로 쓰는 대신, 커피 한 잔 또는 케이크 한 조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행위가 세련되게 느껴집니다.

커피 달아두기는 우크라이나에서 이번에 처음 시작된 건 아닙니다. 커피 달아두기의 기원은 이탈리아 나폴리입니다. ‘카페 소스페소(caffe’ sospeso)’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suspended coffee’입니다. 정확하게 번역하면 ‘유예된 커피’겠지만, 뭔가 어색하게 들리지 않나요?

‘Suspend’에는 ‘유예/중단하다, 연기/유보하다’는 뜻과 함께 ‘매달다/걸다’는 뜻도 있지요. 우리도 외상을 ‘달아둔다’고 하니, 달아두기가 더 자연스럽고 뜻도 통할 것 같아서 저는 ‘커피 달아두기’ 또는 ‘달아둔 커피’로 쓰려 합니다.

나폴리에서 커피 달아두기가 유행한 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입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커피라도 마실 여유가 있던 시민들이 그마저도 없는 이들을 위해 커피 2잔값을 지불하고 1잔을 마신 뒤 나머지 한 잔은 뒤에 올 가난한 누군가를 위해 달아놓았습니다.

커피 달아두기는 이탈리아 경제가 나아지면서 차츰 사라졌습니다만, 나폴리의 유서 깊은 카페인 ‘감브리누스’에서 지난 2010년 개점 150주년을 맞아 되살리기도 했지요.

이 아름다운 전통이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된다면 기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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