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선] 기업과 권력의 거리두기

박현준 2022. 5. 12. 23:3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기자가 되고 처음으로 경제부에 왔다고 소개하면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가장 중요한 건 기업과 권력의 거리두기에 있을 것이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대기업들이 권력을 대하는 태도가 미묘하게 바뀐 듯하다.

이전엔 기업들이 기를 쓰고 실세들에게 다가가려 한 반면 지금은 일정 정도의 거리두기를 하려는 게 눈에 보인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에서 감방에 들어갈 재벌 총수는 누구일까요?”

기자가 되고 처음으로 경제부에 왔다고 소개하면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사회부와 정치부만 떠돌다 온 배경을 두고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기자라고 어느 기업 총수가 들어갈지 알 만한 신통한 재주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경제·사회·정치의 큰 흐름을 눈여겨보면서 조심한다면 그 기업의 총수가 수모를 겪을 확률은 줄어들지 않을까. 따로 돌아가던 톱니바퀴가 일제히 맞물리는 그 순간과 지점이 일종의 발화점인데, 그 발화점을 피하는 안목이 있으면 된다는 얘기다.
박현준 경제부 차장대우
먼저 태평로 한국은행을 주시해야 할 것 같다. 금리 인상의 속도와 수준이 관건이란 뜻이다. 금리 인상은 서민의 고통을 전제하는 처방이다. 실업자도 불가피하게 늘어난다. 1979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취임한 폴 볼커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20%대까지 끌어올렸다.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은 잡았지만 성난 농민들이 트랙터를 워싱턴까지 몰고 와 연준을 봉쇄하고 시위를 벌였다. 살해 위협을 받은 볼커가 권총을 차고 다녔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한은이 과거 미국처럼 극단적인 금리 처방을 할 일은 없을 테고, 이창용 한은 총재가 분노한 시위대에 둘러싸여 출퇴근할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 한은은 혜안과 기술을 겸비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도 금리 인상엔 서민들의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조그만 일에도 화낼 준비를 갖춘다는 뜻이다.

그래서 광화문 아스팔트가 중요하다. 얼마 전부터 마스크를 야외에서 벗게 됐고, 집회·시위 제한도 점차 풀릴 것이다. 1600만표를 얻고도 아깝게 패배했다고 아쉬워하는 진보 진영 측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딱 좋은 조건이다. 물론 진보 진영의 ‘반지성주의’에 분노한 보수 진영 역시 같이 도로를 점령할 수는 있다. 보수 진영의 집회·시위 내공이 지난 몇 년 사이 크게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감성에 대한 절절한 호소와 절묘한 연출력, 치밀한 기획력은 진보 진영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만약 광우병 촛불시위 시즌2가 벌어진다면 새 정부에서 어떻게 진보 진영의 대거리에 대처할까. 너무 눌러도, 너무 풀어도 잡을 수 없는 게 시위다. 윤석열정부에서 핵심 자리를 차지한 구이명박(MB)계 인사들이 트라우마를 억눌러 가며 그 중용의 경계선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예상을 못 하겠다.

가장 중요한 건 기업과 권력의 거리두기에 있을 것이다. 권력과 너무 멀면 얼어 죽지만 너무 가까우면 타 죽는다. 우스갯소리엔 지혜가 담겨 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대기업들이 권력을 대하는 태도가 미묘하게 바뀐 듯하다. 이전엔 기업들이 기를 쓰고 실세들에게 다가가려 한 반면 지금은 일정 정도의 거리두기를 하려는 게 눈에 보인다. 우리 사회가 더욱 성숙해졌다는 징표가 아닐까 싶다. 다만 아직도 달라진 분위기를 눈치 못 챈 일부 대기업이 보이는 점은 아쉽다. 눈앞에 있는 떡이 커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총수 개인이나 주주들을 위해선 좋은 일이 아니다. 그저 행운을 빈다.

박현준 경제부 차장대우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