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난 알린 '임난수 은행나무', 세종시 출범 후 첫 천연기념물

이수린 2022. 5. 12.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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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큰 변이 생길 때마다 울었다. 1910년 경술국치 때도, 6.25 전쟁 때도 울었다. 가지가 하나씩 부러져 내리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이 나무를 베려고 하자 벼락이 치고 울음소리가 나 베지 못했다.”

세종시 연기면 세종리에 있는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구 양화리·세종리 은행나무)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나라의 재액이 있을 때마다 울었다는 임난수 은행나무가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승격됐습니다.

■ 보기 드문 암수 한 쌍, 임난수 은행나무
국립세종수목원에서 나와 금강을 오른편에 끼고 쭉 올라가 봅니다. 국회세종의사당 부지를 지나 왼편 전월산 자락에서 아름드리 은행나무 두 그루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입니다.

왼쪽부터 수직형 암나무, 방사형 수나무. 세종시 관광문화재과 제공.


임난수 은행나무는 노거수 중에서도 보기 드문 암수 한 쌍 모두를 의미합니다. 한 그루는 용트림하듯 굵고 꼬여있는 몸통을 자랑하고, 다른 한 그루는 곧게 위로 뻗어있어, 한 눈에도 서로 다른 모양이 주는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지가 넓게 퍼져있는 나무가 방사형인 수나무, 다른 하나가 수직형 암나무입니다. 암수 한 쌍이 대칭으로 심어져 있는 전통 조경기법에서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유교문화 ‘행단(杏壇)’도 엿볼 수 있습니다.

■ 600살 나무의 내력
이름이 임난수 은행나무인 만큼 고려말 충신 임난수 장군과 인연이 깊습니다. 임난수 장군은 고려말 탐라 정벌에서 큰 공을 세운 무신으로,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하늘 아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습니다. 낙향해 지낸 곳이 삼기촌, 현 세종시 연기면 세종리입니다. 1934년 발간된 연기지(연기지에 500여 년 전 임난수가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부안임씨세보 목판도(1674년) 부조사우도에는 현 숭모각인 사당과 함께 은행나무 두 그루가 그려져 있습니다.

왼쪽부터 연기지 표지, 연기지 본문 관련 기록, 은행나무가 그려져 있는 부조사우도. 연기지 본문에 ‘500여 년 전 임난수가 은행나무 2주를 심었다는 곳에 세종 대 부조묘 건립을 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문화재청 제공.


두 그루가 함께 어우러져 가을이 되면 숭모각의 태극무늬와 함께 샛노란 장관을 자아내는데, 이 숭모각이 임난수 장군을 모시고 있는 사당입니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이면 부안임씨 후손들이 모여 은행나무 목신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임난수 은행나무 사이로 숭모각 삼문의 태극 무늬가 보인다.


■ 은행나무 역사공원 조성 예정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는 세종시 출범 이후 첫 천연기념물입니다. 이로써 세종시에는 시 출범 이전인 1982년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연기 봉산동 향나무와 임난수 은행나무, 모두 두 그루의 천연기념물을 보유하게 됐습니다. 세종시는 “임난수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은행나무 역사공원을 조성해 관광명소로 꾸밀 계획이리라고 밝혔습니다.

문화재청은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가 국가지정 천연기념물로 지정됨에 따라 보존관리 예산의 70%를 지원받는 등 국가 차원의 보호를 받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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