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개항 이후 서울에선 커피 즐겼다
[경향신문]
서촌 등 정치·예술인 몰려
1930년대 다방은 ‘전성기’
점심 식사 후 커피를 들고 가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모습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예사롭게 일어나는 일을 ‘차 마시고 밥 먹는 듯하다’고 표현한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말을 보면 차(茶)는 꽤 오래전부터 시민 일상에 자리 잡은 문화였다.
서울역사편찬원이 개항 이후부터 현재까지 음료 문화를 정리해 12일 발간한 책 <근현대 서울의 차 문화>에는 서울 시민들이 어떻게 차를 즐기게 됐는지가 담겨 있다. 이 책은 개항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광복 이후로 나눠 서울에서 차가 생산·소비되는 모습을 다뤘다.
조선시대 개항 이후 커피와 홍차 등 서양 음료가 처음 서울에서 소비되기 시작했다. 대한제국 황실에서도 손님을 대접할 때 서양 찻잔에 이 차들을 담아 서양 간식과 차려내기도 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대사관들이 밀집해 외국인들의 활동이 많았던 정동과 진고개, 서소문 주변으로 사이다와 같은 새로운 마실거리의 유입도 확산됐다.
일제강점기 경성에서는 일본 백화점·식료품점 등이 진출하면서 일본식 녹차와 코코아, 라무네라고 불린 레모네이드 등이 소비됐다. 특히 경복궁 서측의 서촌과 성북동 일대에 정치·종교·예술인들이 차를 매개로 교류하는 공간이 늘어나면서 1930년대 다방은 전성기를 맞는다. 다방은 ‘끽다점(喫茶店)’ ‘찻집’ ‘티룸’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광복 후 미군정기부터 1970년대까지 산업화와 함께 커피·홍차가 대중화됐다. 하지만 1973년 석유파동으로 소비가 위축되고, 국산품 애용을 장려하는 정부·시민사회의 운동으로 서양 음료를 대체할 각종 인스턴트 차가 개발됐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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