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에게 자유를 허하라"
검열도 삭제도 없는 트위터 꿈꾸는 머스크, 55조원짜리 실험은 성공할까
세계 최고 부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트위터 인수가 소셜미디어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트위터는 일간 사용자가 2억2900만명 수준으로, 페이스북(19억명)·틱톡(10억명) 등 다른 소셜미디어보다 규모는 작다. 그러나 전 세계 정치인과 유명인이 애용해 여론 주도력에선 압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사업 측면에서 보면 트위터는 수년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적자 기업이다. 머스크는 이런 트위터를 시장 가치보다 38% 비싼 440억달러(약 55조7260억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인수 자금을 충당하려 테슬라 주식 960만주(약 85억달러)를 팔아치웠고, 테슬라 주식을 담보로 대출도 받을 계획이다. 이 여파로 테슬라 주가가 하루 만에 12% 하락하기도 했다.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적자 기업을 떠안기로 했지만, 머스크는 트위터 인수로 경제적 이득을 취할 생각은 없다고 못 박았다. 대신 그는 ‘표현의 자유’를 트위터 인수 동기로 내세웠다. 머스크는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기반”이라며 “트위터가 전 세계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믿고 투자했다”고 밝혔다. 9000만명 넘는 팔로어를 보유한 ‘파워 트위터리안’인 머스크는 수년 동안 트위터의 검열과 규제를 비판해왔다. 전방위적인 소셜미디어 규제 강화 흐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머스크의 55조원짜리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검열 없던 초기 트위터로
트위터 창업 초기 딕 코스톨로 CEO를 비롯한 임원들은 트위터를 ‘표현의 자유당의 표현의 자유파(the free-speech wing of the free-speech party)’라고 일컬었다. 전 세계 누구나 트위터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검열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소셜미디어의 규모와 영향력이 커질수록 혐오와 폭력 선동, 허위 정보 등에 대한 규제 요구가 높아졌고, 트위터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강경론을 포기해야 했다. 특히 2016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가짜 뉴스 확산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트위터는 트윗 삭제·계정 정지 등 검열 정책을 강화했다. 트위터 이용 정책 위반을 이유로 트윗이 삭제된 계정은 지난해 상반기 591만개로, 2019년 상반기(191만개)의 세 배에 달한다. 같은 기간 이용을 정지당한 계정은 68만개에서 124만개로 두 배 가까이로 뛰었다.
트위터의 콘텐츠 개입이 확대되면서 일각에선 검열 기준이 편향되거나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트위터는 2020년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아들의 추문을 기사화한 뉴욕포스트 트위터 계정을 정지했다가, 민주당 후보에게 불리한 정보를 검열했다는 비판이 일면서 정지 조치를 취소했다. 지난해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을 영구 정지시켜 논란에 휩싸였다.
자칭 ‘표현의 자유 절대론자’인 머스크는 트위터의 검열 정책을 대폭 완화할 계획이다. 머스크는 지난달 테드(TED) 콘퍼런스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한 포괄적인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트위터에서 사람들이 본인의 생각을 법의 테두리 내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인식과 현실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 같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의는 트위터를 포함한 주요 소셜미디어가 채택하고 있는 수준보다 훨씬 광범위한 정의다. 머스크는 “(법을 위반했는지) 애매한 영역이라 판단이 어려운 경우에는 트윗이 그대로 존재하도록 놔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며 “트윗 삭제를 지양하고, 계정 영구 정지에 대해선 신중하고자 한다”고 했다.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에 성공하자 미국 보수 진영은 환호했다. 미국 보수 진영은 트위터를 포함한 소셜미디어 기업들의 콘텐츠 개입이 좌편향됐다고 주장해왔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 10명 중 7명(69%)은 ‘주요 기술 기업들이 보수주의자보다 진보주의자의 관점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보수와 진보의 관점을 동등하게 지지한다(52%)’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공화당 마샤 블랙번 상원 의원은 “빅테크 기업들은 다른 관점을 가진 사용자를 검열해왔다”며 “머스크가 이 같은 빅테크의 역사를 바로잡아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알고리즘 장난질 막는다
머스크는 소셜미디어 폐해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알고리즘 투명성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알고리즘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사용자들에게 어떤 콘텐츠를 노출할지 결정하는 방식을 뜻한다. 그런데 이 알고리즘이 그 자체로 편향성을 갖고 있어 사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페이스북 내부고발자 프랜시스 하우건은 “페이스북은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들을 극단으로 치닫게 해 중도 좌파는 극좌파로, 중도 우파는 극우파로 유도한다”고 폭로했다. 또 “페이스북은 알고리즘이 허위 정보를 유통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했지만, 수익을 추구하려고 알고리즘 변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알고리즘 문제를 해결하고자 머스크는 ‘오픈소스’ 카드를 꺼내 들었다. 트위터의 알고리즘 코드를 오픈소스 플랫폼인 ‘깃허브(GitHub)’에 공개해 트위터의 알고리즘이 내리는 결정을 사용자들에게 투명하게 보여주겠다는 취지다. 이는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처음 시도하는 일로, 사용자들은 코드를 통해 특정 트윗이 어떻게 타임라인에 올라오고, 강조되며, 삭제되는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사용자들은 변경 사항을 제안하고, 수정할 수 있다.
머스크는 TED에서 “특정 트윗이 강조되거나 무시될 때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누구든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 비밀스러운 조작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어떤 트윗은 알고리즘을 타고 널리 퍼지고, 다른 트윗은 의도적으로 숨겨지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명확한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면 그건 정말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페이스북 내부고발자 하우건은 머스크의 계획에 대해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연구자와 학계에 공개하여 트위터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위터의 수익 모델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바꿀 계획이다. 현재 트위터 매출의 최대 90%를 차지하는 기업 광고 의존도를 줄이고, 대신 ‘트위터 블루’ 같은 구독 모델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브랜드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콘텐츠와 광고가 나란히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 따라서 기업 광고 의존도가 높은 소셜미디어는 콘텐츠 개입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머스크는 지난달 트윗을 통해 “트위터가 생존을 위해 광고 자금에 의존한다면, 트위터 정책은 광고주들의 힘에 좌지우지될 것”이라고 했다.
머스크는 이 같은 변화를 추진하기 위해 트위터를 비상장사로 전환할 계획이다. 비상장사가 되면 상장사를 감시하는 미 증권거래위원회 등 규제 당국의 각종 요구 사항에서 벗어날 수 있고, 회사의 영업 방식이나 규정 등을 변경할 때도 주주의 감시와 압력을 덜 받는다. 잭 도시 트위터 창업자는 “트위터는 월가(街)와 광고 모델에 종속돼 있었고, 이것이 내가 가장 크게 후회하는 것이었다”며 “월가에서 트위터를 되찾아오는 것은 올바른 첫걸음이며, 머스크는 내가 믿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했다.
◇“발상 시대착오적” 비판도
하지만 미국 소수자 단체와 인권 단체는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에 잇따라 우려를 표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각종 혐오와 폭력 선동, 거짓 정보 등이 범람하는 공간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흑인 인권 단체인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는 “트위터가 민주주의를 해치는 혐오 발언이나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배양 접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여성과 성 소수자를 향한 폭력과 욕설을 트위터가 의도적으로 외면할까 봐 우려된다”고 밝혔다.
테크업계 내에서도 머스크의 발상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샨 웡 레딧 전 CEO는 “더 많은 표현의 자유가 악성 콘텐츠에 대한 최선의 방어라는 개념은 요즘 세상에서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이며,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다면 고통의 세계에 빠지게 될 것”이라며 “거대해진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검열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터넷은 현실 세계 그 자체가 되었고, 모든 문화 전쟁이 그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정부나 사용자가 요구해서가 아니라 소셜미디어 자체의 새로운 역학 관계 때문에 검열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케이티 하베스 전 페이스북 부사장도 “머스크는 오늘날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려면 중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트위터엔 남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사람들만 남아 다른 사용자들을 모두 몰아낼 것”이라고 했다.
일반 대중들 역시 소셜미디어의 콘텐츠 개입 필요성에 동의하는 여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가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합의 직후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미국인의 73%가 가짜 정보일 가능성이 있는 게시물을 삭제하는 데 찬성했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폭력을 조장하는 게시물에 대해선 83%가 삭제에 찬성했다. 머스크가 트위터 내 토론의 질을 개선할 것이라 생각하는 응답자는 39%에 불과했다.
강한 영향력을 지닌 소셜미디어를 외부 견제를 받지 않는 개인이 소유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가 높다. 디지털 권리를 옹호하는 비영리단체 ‘파이트포더퓨처’의 에반 그리어 이사는 “우리가 원하는 표현의 자유는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수백만 명의 사람이 의존하는 플랫폼을 사들인 다음 자기 입맛에 맞게 규칙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크리스 머피 민주당 상원 의원도 “소수의 억만장자가 우리에게 중요한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단히 위협적”이라고 했다.
◇머스크 주시하는 규제 당국
다만 전문가들은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가 마무리되더라도 여러 난관에 부딪혀 트위터를 전면 개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제프리 하워드 교수는 “머스크가 콘텐츠 중재 문제를 비교적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콘텐츠 관리에 자유방임적인 접근 방식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했다.
머스크는 먼저 각국의 규제 당국과 맞닥뜨려야 한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트위터를 포함한 빅테크 기업들이 자사 플랫폼에서 유해 콘텐츠를 제거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디지털서비스법(DSA)에 합의했다. 기업이 자사 플랫폼에서 특정 인종이나 성, 종교에 대한 편파적 발언, 허위 정보 등 불법 콘텐츠를 방치하면 글로벌 매출액의 최대 6%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받는다. 반복 위반 시 EU 내에서 플랫폼 운영이 중단될 수도 있다. 티에리 브르통 EU 집행위원은 “유럽에서 적용되는 것은 머스크의 규칙이 아니라 우리의 규칙”이라며 “머스크도 DSA를 따라야 한다”고 했다.
영국 정부도 지난 3월 빅테크 기업이 불법적이거나 유해한 콘텐츠를 관리할 의무를 규정한 ‘온라인 안전법’을 의회에 제출했다. 법 위반 시 영국 미디어 규제 기관 오프콤은 전 세계 매출의 최대 10%에 해당하는 벌금을 기업에 부과할 수 있고, 규제 당국에 협력하지 않는 임원은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영국 의회는 지난 4일 머스크에게 의회에 출석해 트위터 인수와 관련해 증언해달라고 요청했다. 줄리안 나이트 영국 하원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 위원회 위원장은 성명에서 “머스크가 언론의 자유와 사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의무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룰 계획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광고주의 이탈도 머스크의 트위터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머스크는 광고 의존도를 줄이고 구독 모델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 트위터의 구독 매출은 전체 매출의 8%에도 미치지 못한다. 임란 아흐메드 디지털혐오대응센터 CEO는 “여성 혐오와 인종 차별을 허용하는 플랫폼은 광고주와 기업 파트너를 급격하게 잃어 수개월 내에 껍데기만 남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디지털혐오대응센터 등 시민사회 단체 24곳은 애플, 코카콜라, 디즈니 등에 서한을 보내 “광고주들은 트위터가 증오 표현과 잘못된 정보를 제한하는 정책을 유지하지 않을 경우 광고를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머스크는 이에 대해 “정보 접근권을 통제하려는 이런 단체에 누가 자금을 대는지 조사해보자”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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