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만에 1290선 뚫은 환율.. 연준 '빅스텝'에 신흥국 긴축발작

김신영 기자 2022. 5. 1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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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2일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이후 최고치로 치솟는 등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충격이 신흥국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종로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의 모습. /뉴시스

1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일보다 13.3원 급등해 1288.6원에 거래를 마쳤다. 코로나 확산 초기 금융시장 불안으로 달러 가치가 치솟았던 2020년 3월 고점(달러 당 1285.7원)을 넘어서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7월 이후 최고치로 상승했다. 오후 한때 달러 환율은 129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전일 미 고용통계국이 4월 소비자물가가 시장 전망치(8.1%)보다 높은 전년 동월 대비 8.3% 올랐다고 발표하자 불안이 번지며 달러 가치가 올라간 영향이다. 주요국 대비 달러 가치를 집계한 달러 인덱스는 104를 돌파하며 2002년 12월 이후 약 19년 반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41년만의 인플레이션을 꺾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전례 없는 속도와 폭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글로벌 금융 시장이 충격에 빠졌다. 특히 통화 가치 및 자본 시장이 선진국에 비해 충격에 취약한 신흥국이 연쇄적으로 큰 타격을 받는 상황이다. 달러의 상대적 가치가 올라가면 신흥국은 자국 통화 대비 수입 물가가 상승해 안 그래도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지난 11일 발표된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하자 달러 가치가 급등하고 증시가 폭락하며 공포가 커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수습한 후 미 연준이 풀었던 돈을 거둬들이는 과정에 신흥국 시장이 무너졌던 2014년 ‘긴축 발작’과 유사한 충격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일 미 증시가 내려간 데 이어 12일 한국 증시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12일 코스피는 전일보다 1.6%, 코스닥지수는 3.8% 급락해 거래를 마쳤다. 12일 홍콩 항셍지수가 2.2%, 대만 가권지수가 2.4% 내려가는 등 아시아 신흥국 증시도 대부분 급락했다. 위험 자산인 비트코인 가격은 12일 10% 가까이 하락하며 9개월여 만에 4000만원선이 붕괴됐다.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 4일 회의 때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났다는 조짐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고 발언하면서 4월 미 물가상승률이 상당 폭 내려갔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시장에 번졌었다. 하지만 결과가 반대로 나오면서 시장은 다시 공포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신흥국 시장도 연준의 긴축 공포가 유발한 충격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시장에 불안이 번지며 안전한 달러로 돈이 몰리자 신흥국 통화 가치가 일제히 하락하고 증시 하락세도 멈추지 않고 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대도시를 봉쇄한 중국은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가 5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이 18개월 만에 최저치인 달러당 6.792위안까지 올라갔다. 로이터는 “2년 간의 코로나 충격에서 간신히 회복하기 시작한 신흥국 경제가 2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강달러와 인플레이션, 투자 자금 유출 등 동시다발적 충격에 휘청이고 있다”라고 전했다. 모건스탠리 신흥국 통화지수는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에 가속도를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한 4월 이후 4% 하락했다.

문제는 신흥국 시장 불안이 단기간에 잦아들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미 연준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은 이제 막 시작돼 연중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연준은 지난 4일 0.5%포인트 기준금리를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하면서 앞으로 두 번 정도 더 0.5%포인트 인상을 하고 그후에도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계속 올릴 것임을 예고했다. 미국 금리가 빠르게 올라갈 경우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신흥국 자금이 추가로 빠져나가면서 증시 및 채권 시장이 큰 충격이 겉잡을 수 없이 번질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한국은 코로나 발생 초기에 체결한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가 지난해 말 종료돼 지금은 ‘환율 안전판’이 사라진 상황이다.

이승훈 KB금융지주 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미 물가가 계속 8% 넘는 수준에 머무르면서 연준이 경기 침체를 감내하면서 물가를 잡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특히 미국의 증시와 주택 가격 등은 코로나 이후 많이 올라 있어 연준이 최근 증시 폭락을 오히려 ‘거품’을 꺼뜨릴 기회라고 판단해 긴축 속도를 늦추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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