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올리겠소" 뉴욕도 베를린도 서러운 월세살이

안상현 기자 2022. 5. 1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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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전세계 휩쓰는 월세대란

“집세는커녕 음식도 살 수 없다!”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시청 앞 공원에 이런 외침이 울려 퍼졌다. 2주 전 뉴욕시 렌트가이드라인위원회(RGB)가 올해 임대료 인상률 상한선을 1년 임대 4.5%, 2년 임대 9%로 정한 것에 반발하는 목소리다.

RGB는 뉴욕 시내 약 100만 가구에 적용되는 임대 아파트 임대료 인상률을 정하는 기관으로,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임대료 인상을 최소한으로 억제해왔다. 지난 5년간 가장 많이 올렸던 게 각각 1.5%(1년 임대)와 2.5%(2년 임대)에 불과했고, 2020년에는 아예 임대료를 동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난방비와 전기요금, 보험료, 건물 관리비, 인건비 같은 운영비가 전년 대비 크게 올라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RGB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세입자들은 이미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충격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어 임대료를 더 낼 여력이 없다고 항의하고 있다. 브래드 랜더 뉴욕시 감사원장 역시 “RGB는 물가상승률이 높은 시기 주택시장에서 세입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성명을 냈다.

지난달 28일 미국 뉴욕 시청 앞 공원에서 임대 아파트 세입자들이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을 규탄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뉴욕시 렌트가이드라인위원회(RGB)가 아파트 임대료 인상률 상한선을 예년보다 3배 이상 높게 제안한 데 대한 항의다. /AFP연합

임대료 인상 대란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미국 전역의 아파트 임대료는 전년 동기 대비 14.9% 상승했다. 1년 사이에 임대료가 20% 이상 오른 주가 플로리다(29%), 애리조나(25.1%) 등 일곱 개나 된다.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의 월세 인상률은 살벌할 정도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 레드핀 등에 따르면, 올 초 기준 뉴욕과 오스틴, 마이애미 같은 도시들의 임대료는 1년 전보다 30~40% 올랐다. 임대료가 가장 비싸다는 뉴욕 시내 방 1개짜리 아파트의 4월 기준 평균 월세는 무려 4761달러(약 607만원)에 달한다.

유럽도 사정이 비슷하다. 부동산 임대 중개회사 하우징애니웨어가 집계한 유럽 전역의 평균 주택 임대료는 올 1분기 기준 연 14.5% 상승했다. 베를린 같은 도시는 인상률이 40%에 육박한다. KB부동산이 집계하는 서울의 월세지수도 지난달 기준 111.8(2019년 1월=100)로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찍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전 세계적인 월세 대란이 팬데믹 규제에서 막 벗어난 도시들을 다시 사로잡았다”고 했다.

◇심화된 수급 불균형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월세 대란의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폭넓은 수요와 제한된 공급”이라고 설명한다. 팬데믹으로 침체됐던 경기가 회복기에 들어서면서 수요가 늘어났지만, 임대 주택 공급은 제한적인 탓에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는 것이다. 팬데믹 초기 미국 주요 도시는 인구가 교외로 빠져나가며 임대료가 하락했지만, 작년 하반기 이후 유입 인구가 늘자 임대료가 급반등하기 시작했다. 하버드대 주택연구센터는 “팬데믹 시작 이후 부모 집에 가 있던 젊은 인구가 다시 돌아오면서 임대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고 했다. 미국은 작년 4분기 임대용 주택 공실률이 5.6%로 3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임대 주택 공급은 제한적이다. 코로나로 상당 기간 건설 공사가 중단된 데다 최근엔 글로벌 공급망 대란으로 건설 자재가 부족해지면서 주택 건설 속도가 더 느려졌기 때문이다. 전미주택건설협회(NAHB)는 최근 “원자재 값 급등으로 비용이 급등하고 있어 저렴한 주택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미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건축 승인을 받았지만, 아직 착공되지 않은 주택 수는 지난 3월 29만채로 1974년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건축업계 심리를 대변하는 경기선행지수인 NAHB·웰스파고 주택시장지수 역시 지난달 기준 77로 전월 대비 2포인트 감소하는 등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에 따른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이자율 상승이 수급 불균형을 가중시켰다. 금리가 오르자 대출을 끼고 임대용 주택에 투자했던 집주인들이 집을 매물로 내놓으면서 월세 공급은 줄고, 금리 부담에 자가 마련을 꿈꾸던 사람들이 임대로 눈을 돌리면서 월세 수요는 증가한 것이다. 가령 모기지 금리가 지난해 연말 3.6%대에서 최근 4.1%까지 치솟은 영국 런던에서 올 1분기 현지 부동산 포털 주플라에 광고된 임대 부동산 수는 지난 5년간 평균보다 45% 줄었다. 폴 체셔 런던경제대 명예교수는 “최근 몇 년간 신규 임대 주택 건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임대료가 단기 수요 변동에 매우 민감하다”고 했다.

◇올해 더 오른다... Z세대가 최대 피해자

여러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보니 월세 대란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영국·독일 등 각국 정부가 지난해부터 각각 150만~200만호에 달하는 신규 주택 공급 계획을 발표했지만, 신규 주택이 시장에 공급되려면 최소 몇 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난달 발표한 조사에서 뉴욕연방준비은행은 향후 1년간 임대료가 11.5% 더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계속되는 월세 대란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월세를 감당할 능력이 안 되는 저소득층, 그중에서도 청년층이다. 미국 시애틀타임스에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차에서 먹고 자며 학교에 다니는 UC버클리대 대학생의 이야기가 실렸다. 독일 베를린에선 임대료를 깎아주는 대가로 젊은 여성들이 집주인으로부터 성관계를 제안받는 사례가 흔하다는 보도도 나왔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엔 미국 세입자의 49%가 30세 미만 청년층이었는데, 팬데믹 이후에는 이 비율이 더 늘고 있다. 부동산 정보 업체 렌트카페가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작년에 Z세대(1997~2012년 출생자)의 임대 신청서 작성은 전년 대비 21% 증가한 반면 다른 세대의 임대 신청은 모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가 회복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찾는 Z세대가 늘어난 것이다.

한국도 사정이 비슷하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대법원 등기부등본 자료를 분석한 결과, 30세 미만 세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4월 기준 25.2%로 전년(23%) 대비 2.2%포인트 상승했다. 다른 세대는 모두 비중이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달 23일 독일 보훔에서 열린 월세 인상 반대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상어 의상을 입고 '상어같은 임대업자에게 먹이를 주지 맙시다'라는 팻말을 들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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