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주먹구구 유해물질 관리, 바뀌어야 한다

2022. 5. 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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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소비자용품의 위해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인체적용제품 위해성 평가법'이 작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식약처가 소비자용품의 화학적·생물학적·물리적 위해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인체노출 안전기준'을 설정하기 위한 기본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인체에 직접 적용하는 식품·화장품·의약품·위생용품 등이 대상이다.

'독성학의 아버지' 파라셀수스는 "용량(dose)이 독을 만든다"고 했다. 인체에 해로운 '독'(毒)과 질병을 치유시켜주는 '약'(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도 잘 쓰면 약이 되고, 약도 잘못 쓰면 독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제품의 위해성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사실을 무시한 획일적인 평가와 관리는 자칫 소비자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순진한 소비자들이 '어린이에게도 안전하다'는 제조사의 광고를 믿었던 가습기 살균제의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정제'라는 품목으로 판매했던 가습기 살균제에는 세정에 필요한 계면활성제(세척제) 성분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가습기의 세균·곰팡이·물때의 제거에 필요한 살균성분의 농도도 턱없이 낮았다. 사실 가습기 살균제는 아무 기능도 할 수 없는 맹물이었던 셈이다.

제조사가 소비자들에게 요구한 '사용법'이 문제였다. 소비자가 세정·살균용으로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를 깨끗하게 씻어내고 헹구는 대신 가습기를 작동시켜서 살균 성분을 밀폐된 실내 공기 중에 지속적으로 분무시키도록 요구했다. 살균 성분의 반복적·지속적인 노출에 의해서 나타나는 만성 독성이 소비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발생시켰다. 사용법은 무시하고 제품의 성분만 규제하는 식약처의 위해성 평가법으로는 그런 위험을 막아낼 수 없다.

화학물질의 위해성을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파악하는 일이 언제나 가능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안심하고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땅콩에 들어있는 알러지 유발물질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화학물질의 발암성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알려져 있는 것도 아니다. 박테리아(세균) 수준에서 유전독성이 의심된다고 해서 무작정 겁을 내야 할 이유가 없다. 세균에서의 유전독성은 인체 발암성의 가능성을 알려주는 다양한 지표 중 하나일 뿐이다.

국제암연구센터(IARC)가 1976년부터 인체 발암성을 확인한 1군 발암물질의 수는 70여 종에 지나지 않는다. 1군 발암물질이라고 누구나 겁을 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술·담배·젓갈·숯불도 오래 전에 발암성이 확인된 1군 발암물질이다. 폐암 환자의 30% 이상이 흡연 경험자이고, 알코올 중독자 중에 간암 환자가 특별히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흡연과 음주를 포기하지 않으면 누구나 암에 걸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발암성에 대한 과도한 불안을 부추기는 제도는 특별히 경계해야 마땅하다.

모다모다의 발색 샴푸에 대한 식약처의 규제 시도도 과도한 것이다. 제품이 개발되어 소비자에게 판매되고 있는 상황에서의 규제는 훨씬 더 신중했어야만 했다. 스포츠에서도 경기가 시작된 후에 규칙을 바꾸는 일은 함부로 허용되지 않는다. 자칫하면 식약처가 윤리성을 심각하게 의심받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식약처의 광고 금지 조치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의해 거부되었고, THB(1,2,4-트라이하이드록시벤젠)의 사용금지 조치도 규제개혁위원회에서 퇴짜를 맞았다.

뒤늦게 발색 샴푸를 내놓기 시작한 화장품 큰 손들과 일부 전문가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시선이 차갑다. 화장품 기업들도 보존제·계면활성제 성분이 위해성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논란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개구리가 되었다고 올챙이 시절에 겪었던 어려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THB의 사응을 금지하고 있다는 식약처의 주장은 몹시 부끄러운 것이다. 오히려 유럽연합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미국·일본·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를 주목해야 한다. 식약처가 1년 이내에 THB의 인체 발암성을 확인하겠다고 나선 것도 황당하다. 식약처가 화학물질의 인체 발암성을 확인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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