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데뷔 후 2악장 쓰는 피아니스트 김선욱 "음악가로서 이제 시작"

진달래 2022. 5. 12. 1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베토벤·브람스 주로 연주하던 20대 지나고
지휘자 꿈 이룬 김선욱 "요즘 가장 열심히 살아"
5월 국내 공연은 알베니즈·슈베르트·리스트로
이달 국내 독주회를 여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12일 서울 서초동의 한 사무실에서 취재진과 만나 "베토벤과 브람스를 주로 연주하던 시절이 (연주자로서) 유년 시절이라면, 이제 음악가로서 시작하는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빈체로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전 세계의 연주가에게 무대를 빼앗았지만, 피아니스트 김선욱(34)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남았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했던 지휘자로의 데뷔다. 12일 서울 서초동의 한 사무실에서 취재진과 만난 그는 "어린 나이부터 피아니스트로 정글 같은 세상에 있다 보니 지휘 공부에까지 시간을 할애할 엄두가 안 났는데, 코로나19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대 초반 영국왕립음악원 유학 시절에도 피아노가 아닌 지휘를 전공하는 등 그간 쌓아 온 준비를 토대로, 그는 지난해 1월 KBS교향악단 앞에서 첫 지휘봉을 잡았다. 내달리던 그의 삶에 팬데믹이 재정비의 시간이 된 셈이다.

김선욱은 2006년 열여덟의 나이로 리즈국제콩쿠르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완주하는가 하면 2017년에는 그의 베토벤 음악 연주 장면이 실린 영화 '황제'까지 나오면서 '베토벤 전문가'로 불렸다. 그는 당시를 "즐거우면서도 버거웠다"고 돌아봤다. 앞에 닥친 것을 해내기 바쁜 시절이었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는 그는 "이제야 음악을 나의 해석이나 방향으로 할 수 있게 된 느낌이다. 음악가로서 지금 시작했다고 믿고 있다"며 초심자와 같은 설렘을 드러냈다.

지휘자 활동은 '피아니스트 김선욱'도 성장시키고 있다. 음악 해석이 전보다 넓어졌다. 콩쿠르 결선 등 여러 무대에서 선보였고 음반에도 실었던, 가장 자신있는 연주곡인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그 스스로 자신의 성장을 깨닫게 한 곡이다. "최근 미국에서 이 곡을 연주했는데, 그전보다 지금이 훨씬 나아졌다고 스스로도 느꼈어요. 예전에 이 곡을 연주한 음반을 들었는데 못 들어주겠더라고요(웃음)."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15일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총 3회 공연하는 국내 독주회 포스터. 빈체로 제공

자신의 성장을 느낄 수 있는 건 당연한 말이지만 혹독한 연습 덕이다. 특히 최근 2년여는 "서른넷 인생에 가장 열심히 살고 있는 시기"라고 할 정도다. 연주회가 없을 때는 오전에는 피아노 연습을 3시간, 늦은 오후에는 악보 공부를 3시간, 밤 늦게는 다양한 음악을 청취하는 게 일종의 루틴(습관적으로 수행하는 일정)이다. 특히 악보 공부는 '지휘자 김선욱'을 키우고 그 경험은 다시 '연주자 김선욱'에게 거름이 된다. 그는 "연주는 무대에 선 순간이 중요하지만, 지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연주 전에 보내는 연습 과정이 더 중요하다"면서 "믿음을 쌓으려면 (지휘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제시해야 하고, 그러려면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달에 여는 국내 독주회는 지휘자 데뷔 후 피아니스트 김선욱으로서 성장의 결과물이다. 슈베르트 네 개의 즉흥곡 D.899, 알베니즈 ‘이베리아’ 모음곡 제2권, 리스트 소나타 b단조를 연주한다. 20대에 천착했던 베토벤과 브람스는 제외했다. 음악가로서 2악장을 연 김선욱이 처음 생각한 곡은 여태까지 무대에서 한 번도 선보이지 않은 알베니즈의 '이베리아'였다. 알베니즈를 중심으로 그가 존경했던 리스트, 리스트가 선망했던 슈베르트로 거슬러 올라가며 프로그램을 짰다. 그는 "슈베르트 즉흥곡은 '음악이란 게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를 느끼고 여섯 살 때 부모님께 처음으로 악보를 사달라고 졸랐던 작품"이라며 "오랜만에 진지하게 연주하고 싶다"고 전했다. 공연은 1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시작해 마포아트센터(18일), 경기 광주 남한산성아트홀(19일)에서 열린다.

음악가로서 갈 길이 멀다는 그의 롤모델은 국내에서는 정명훈과 김대진, 국외로는 크리스토퍼 에센바흐, 앙드레 프레빈 등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선배 음악가들 모두다. "처음부터 사람들이 (저를) 지휘자로 인식하는 데는 5, 6년 정도는 걸릴 거라고 예상했어요. 비중은 모르겠지만, 피아노를 놓을 마음은 없어요." 올해도 7월 부산시향 정기연주회를 포함해 국내외에서 지휘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