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15)국방드론서 쌓은 데이터 실시간 처리기술 우주발사체로 확대하다
우리 힘으로 만든 첫 국산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지난해 10월 21일 전남 고흥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서 불꽃을 내뿜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발사를 준비한 대부분 관계자들이 누리호가 우주에 안착할 때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는 없었지만 발사 직후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누리호를 보며 다른 이들보다 조금 먼저 뿌듯해한 사람들이 있었다. 누리호와 발사대 장비가 발사 직전까지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하게 하는 지상제어시스템을 맡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들과 시스템 개발을 맡은 유콘시스템 관계자들이다.
지상제어시스템은 우주발사체가 발사 전 지상에 대기할 때 외부에서 기능을 확인하고 각종 기능을 제어하는 장치다. 조립 과정에서 1~3단에 이르는 누리호 각 단의 전자장비 상태와 연료를 공급하는 시스템의 정상 작동 여부, 가스 유출 상태를 면밀히 알려준다. 엔진 성능을 시험하는 추진기관시험장에서는 발사체에 명령을 내려 엔진을 켜고 시험이 끝나면 멈추는 신호도 지상제어시스템이 보낸다. 발사체를 발사대로 옮기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발사 전 대기 상태의 누리호를 관리하는 집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누리호가 발사대에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서면 역할이 더 많아진다. 발사통제동에 수많은 모니터로 누리호에 실린 탑재장비와 밸브, 회로가 제공하는 수치 자료를 보내고 명령을 받는 기능을 한다. 누리호 발사가 임박해 발사체에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하는 명령도 지상제어시스템을 통해 내려진다. 이렇게 준비가 끝나면 누리호는 발사 10분전부터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발사 준비에 들어가는데 이런 '자동발사시퀀스' 프로그램도 지상제어시스템을 통해 입력된다. 발사 직전 발사대인 엄빌리컬 타워와 누리호를 잇는 각종 선들을 풀고 집게 형태의 고정장치를 해제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지상제어장치는 누리호가 발사되면 비로소 소임을 마친다. 누리호가 비행을 시작하는 시각이 지상제어장치의 임무가 비로소 끝나는 순간이다. 이달 4일 대전 유성구 유콘시스템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고진현 유콘시스템 체계사업실 수석연구원은 지난 누리호 1차 발사 때를 회상하며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기업 관계자들 가운데 우리 회사 사람들이 나로우주센터에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이었을 것 같다"면서 "누리호 1차 발사가 목표를 완수하지 못해 안타까웠지만 누리호가 떠오르는 순간 임무가 끝났다는 생각에 잠시 안도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항우연은 이렇게 누리호의 개발과 조립, 발사 전 모든 단계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지상제어장치를 무인항공기 전문기업 유콘시스템과 함께 개발했다.
한국은 무게 1.5t의 인공위성을 고도 600∼800㎞의 지구 저궤도(LEO)로 쏘아올리는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3단형 우주발사체인 누리호를 개발하고 있다. 길이 47.2m, 무게 200t에 이르는 거대한 누리호 동체에는 엔진과 비행, 단 분리, 통신을 담당하는 수많은 전자장비가 들어간다. 이런 장비들이 모두 오류 없이 정확히 작동해야만 목표한 고도에 인공위성을 올려보낼 수 있다. 지상제어시스템은 이런 누리호 내부의 전자장비가 잘 작동하도록 발사전까지 외부에서 지원하는 모든 장비를 통칭해 부르는 용어다.
지상제어시스템은 조립과 점검 과정에 쓰이는 ‘탑재장비 점검시스템(GTCS)’과 ‘탑재장비 발사운용시스템(GLPS)’, ‘발사준비 제어시스템(PACS)’으로 구성됐다. GTCS는 항우연 본원과 우주센터 조립동, 우주센터 추진기관시험설비 등 조립과 시험이 진행되는 세 곳에 각각 구축됐다. GLPS와 PACS는 누리호가 발사대에 기립한 이후 발사까지 전 과정을 발사동과 멀리 떨어진 발사통제센터에서 실시간으로 제어할 수 있게 돕는다.
성능은 얼마나 빠르게 누리호와 제어를 담당하는 이들 사이에 양방향으로 데이터를 전달하느냐에 좌우된다. 데이터 수신과 명령 전송, 알고리즘을 통한 자동 제어가 밀리초(ms·1000분의 1초) 단위로 진행되는데 이 짧은 시간에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콘시스템은 2001년 창업한 드론 전문기업이다. 한국의 첫 무인 군용 정찰기 ‘송골매’를 개발한 개발자들이 주축이 돼 회사를 설립했다. 항우연과 국방과학연구소(ADD)의 무인기 사업에 다수 참여하며 드론을 조종하는 지상제어시스템도 함께 개발했다. 드론용 지상통제장비는 2004년과 2011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하기도 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10년 이상 국방 드론 지상제어 기술을 개발하면서 기술력을 쌓은 유콘시스템에게도 누리호 개발은 큰 도전이었다. 크기가 작은 드론은 간단한 명령만으로도 제어가 가능하지만 37만 개에 달하는 부품으로 구성된 거대 기계장치인 누리호를 정확히 제어하려면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고 수석연구원은 “누리호 제어에 쓰이는 데이터는 드론을 비롯한 다른 제어시스템과 비교하면 수백 배 크다”고 말했다.
한국은 발사체 개발 역사가 비교적 짧은 편이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각국이 기술 공개를 꺼려 참고할 만한 첨단 시스템은 많지 않다. 발사체 제어시스템은 완벽해야 하기 때문에 검증이 안된 새로운 컴퓨터와 장비를 도입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해외 사례를 모방해 장비를 도입해도 오래된 모델이 대부분이라 실제 현장에서 성능이 부족한 경우도 생겼다. 서진호 항우연 체계종합팀 책임연구원은 "데이터 수신, 명령 전송과 알고리즘을 실시간 처리해야 했는데 충분한 검토 끝에 도입한 장비의 성능이 부족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유콘시스템은 항우연과 함께 한국만의 개선된 시스템을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발사체 선진국보다 더 첨단 장비를 도입해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지상에서 제어를 담당하는 담당자들이 조작하는 그래픽 기반 소프트웨어도 모두 유콘시스템이 제작했다. 고 수석연구원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능과 기능도 늘었고,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도 우주개발 선진국보다 더 낫게 업그레이드했다"고 말했다.
유콘시스템은 누리호의 지상 제어를 맡은 운영자들이 사용하는 장치인 콘솔 51대, 제어에 사용되는 콘솔 화면 4872개를 개발했다. 발사대에 누리호를 직접 세우지 않고도 누리호가 서있는 것처럼 가정하고 기능을 시험할 수 있도록 '시뮬레이터(SIM)'도 개발했다. 시뮬레이터는 실제 누리호가 내는 신호와 같은 신호를 낸다. 발사체 없이도 발사대 시험과 검증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유콘시스템이 누리호 개발에 참여하게 된 것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콘시스템이 국방 분야에서 보여온 기술력을 눈여겨 본 항우연이 개발 참여를 권유하면서다. 서 책임연구원은 8년전을 회상하며 “유콘시스템이 드론 지상제어시스템에 적용한 실시간 데이터 처리 기술을 확장하면 우주발사체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사업 참여를 권유했다"며 “제안을 한 다른 기업들은 대부분 기술 난이도가 높고 과업 범위가 넓다는 이유로 참여를 거절했는데 유콘시스템만 선뜻 도전해보겠다는 뜻을 보내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유콘시스템은 지난해 매출액 134억 원을 기록했다. 동시에 18억7000만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유콘시스템은 최근 3년간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유콘시스템의 주력 사업이던 드론 산업이 중국산 저가 드론 공세에 시달리면서 최근 침체기를 겪는 여파가 반영됐다. 유콘시스템은 드론 침체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누리호 사업과 관련한 매출이 발생한 것은 긍정적인 상황으로 보고 있다.
유콘시스템은 현지 기술을 다른 우주발사체에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가 차세대발사체 개발사업 예비타당성 조사를 시작하며 신규 발사체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고 민간에서도 발사체 개발 의지를 밝히면서 지상제어시스템 분야도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항우연도 누리호 지상제어시스템을 처음부터 여러 발사체에 활용할 수 있는 범용성을 감안하고 설계했기 때문에 다른 발사체 지상제어에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서 책임연구원은 “누리호에 쓰인 지상제어시스템은 확장성과 유연성에서 뛰어나다"며 "조금만 수정해도 다른 우주발사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유콘시스템이 해외보다 더 최신 기술을 많이 적용한 제어시스템을 구축하면서 확보한 노하우도 강점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 수석연구원은 “지상제어시스템을 개발하며 실시간 데이터 처리기술과 자동화 시나리오 기술을 새로 축적했다”며 “발사체 이외 다른 분야에도 활용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다른 중소벤처 기업들처럼 유콘시스템 관계자들도 국내 우주산업이 아직 태동기인 만큼 국가의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고 수석연구원은 “저희 회사도 우주산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국가적으로든 산업적으로든 성숙기에 빨리 접어들어 국가경쟁력이나 기업체들의 발전이 빨리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아직은 기업 차원에서 큰 사업 투자를 끌고 나가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기반이 마련될 때까지는 투자를 이어가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1)발사체·위성 종합솔루션 기업 꿈꾸는 KAI
- [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2)차량용 고압탱크 만들던 전통제조사는 어떻게 우주기업이 되었나
- [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3) 극한의 우주환경 견디는 복합소재로 우주시장 정조준
- [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4) 우주발사체의 강력한 불꽃 지피는 고속 회전날개를 만들다
- [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5) 우주발사체 전자장비 이어주는 신경망을 책임지다
- [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6) '백곰 미사일의 혼' 누리호에도 들어있다
- [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7)발사부터 위성 분리까지 생생히…누리호 생중계 시스템을 만들다
- [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8) 우주발사체 시험설비 종합 솔루션 기업 꿈꾼다
- [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9) 한국에도 우주발사체 심장 로켓엔진 찍어내는 공장이 있다
- [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10)발사체 제작 경험, 핵융합로 수주로 이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