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지킨다더니 59조 추경, 물가 걱정이라더니 25조 현금 풀어
더 들어올 세수 53조 중 국채상환은 9조..국가채무 8.4조 감소
"빚 더 줄여야 하지만 소상공인·민생지원 불가피"
현금 지원에 4%대 물가 추가 자극, 통화·재정정책 '엇박자' 우려도
(세종=연합뉴스) 차지연 김다혜 박원희 기자 = 윤석열 정부의 첫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인 올해 2차 추경은 50조원이 넘는 초과세수를 기반으로 역대 최대인 59조4천억원 규모로 편성됐다.
적자국채를 찍지 않고 오히려 기존 국채를 9조원 축소해 국가채무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줄어들게 됐다.
그러나 재정건전성을 중시하겠다던 윤석열 정부가 막대한 초과세수로 빚을 갚기보다 '초대형' 추경을 편성한 것, 물가 상승세가 심각한 상황에서 20조원 넘게 현금을 뿌리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소상공인 지원금 600만원 지급 등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과도 관련이 있는 이번 추경이 물가와 국가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68조4천억원 마련, 59조4천억원 지출…재정수지·국가채무는 개선
12일 정부가 발표한 추경 내용을 보면, 2차 추경 59조4천억원 재원 대부분은 초과세수다. 정부는 올해 기존 예상보다 53조3천억원의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보고 세입 계획을 바꿨다.
여기에 지난해 초과세수에 따른 세계잉여금, 한국은행 잉여금, 기금 여유자금 등으로 8조1천억원을 조달했다.
지출 구조조정으로는 7조원을 확보했다. 착수가 늦어지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의 감액분이 3조2천억원, 집행부진 사업 감액분이 1조5천억원이고 공무원 연가보상비 절감 등으로 추가 감액을 했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 합계는 68조4천억원이다.
이 중 59조4천억원은 소상공인 지원과 방역, 지방 교부금 등 추경 지출에 쓰고 9조원은 국채를 갚는 데 쓴다.
초과세수로 늘어난 수입이 추경으로 늘어난 지출보다 많아 재정수지는 소폭 개선된다.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68조5천억원으로 1차 추경보다 2조3천억원 감소하고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도 3.3%에서 3.2%로 내려간다.
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보장성 기금을 차감해 실질적인 나라살림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108조8천억원으로 1차 추경보다 1조9천억원 줄어든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5.2%에서 5.1%로 축소된다.
9조원의 국채 상환과 지난해 결산 등을 반영하면 국가채무도 1천67조3천억원으로 1차 추경보다 8조4천억원 감소하고,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50.1%에서 49.6%로 내려간다.
"초과세수 다 긁어 써선 안돼" 비판하던 추경호, 59조 추경 편성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의 추경을 편성하면서도 막대한 초과세수를 통해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하지 않고 오히려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국가채무는 여전히 1천조원을 웃돌고 나라살림 적자도 100조원대에 달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민의힘 소속 국회 기획재정위원이던 지난해 6월 23일 기재위의 기재부 정책질의에서 "세수가 정부의 당초 전망보다 추가로 더 들어왔으면 빚을 조금 줄여 가야지, 그걸 있는 대로 다 긁어 쓰겠다는 게 거시정책 차원에서도 맞지 않고 재정 운용에서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과거 초과세수 기반의 추경 편성을 강하게 비판했던 추 부총리가 자신이 비판했던 것처럼 초과세수를 통해 60조원에 가까운 대규모 추경 편성에 나선 것이다.
추 부총리는 이날 브리핑에서 "국회에 제출할 추경 예산 규모는 59조4천억원이지만 관련 법에 따라 지방에 이전하는 23조원이 포함돼있어 실제 정부가 소상공인 지원, 방역 보강, 민생 안정에 편성한 일반지출 규모는 총 36조4천억원"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여당, 정부는 그동안 추경 규모를 '33조원 플러스알파(+α)'로 설명해왔다. 초과세수의 40%에 달하는 지방 교부금 23조원을 제외하고 소상공인 지원 등 일반지출 36조4천억원을 기준으로 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거 추경 편성 때 지방 교부금을 제외한 규모를 앞세워 설명한 전례는 없다.
이번과 마찬가지로 초과세수를 활용했던 지난해 2차 추경 때도 정부안 33조원 중 지방 교부금이 12조6천억원이었는데 편성 과정에서도 이를 포함해 총 규모가 거론됐다.
이번 추경을 편성하면서 인수위와 당정이 지방 교부금을 제외한 '30조원대 재정자금 투입'을 꾸준히 강조한 배경에는 59조원대의 초대형 추경 규모가 재정건전성 강화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피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가 올해 초과세수 중 9조원을 국채 상환에 쓰겠다고 밝혔으나, 50조원이 넘는 초과세수 규모와 현재 재정 상황을 고려하면 추경 지출 규모는 지나치게 크고 국채 상환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염명배 충남대 교수는 "현재의 재정 상황에서 59조원 규모 추경 편성은 부담스럽다"며 "이전 정부에서 빠른 속도로 국가채무가 늘었기에 국채를 상환해야 하고 9조원이 적지는 않지만, 세수가 정말로 50조원 넘게 더 들어올지 알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상대 기재부 2차관은 "사실 이렇게 초과세수가 많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가능하다면 국채 축소를 9조원보다 더 해야 하는 게 맞지만, 소상공인 지원과 민생 안정을 위해서는 초과세수 중 20조원 이상을 일반 지출에 충당하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물가 자극 우려…"공약 지키는 것 좋지만 경제에 부담 갈 수도"
이번 추경을 통한 대규모 현금 살포가 최근 4%대 물가 상승세에 기름을 부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소상공인·중소기업 370만 곳에 최소 600만원, 최대 1천만원의 손실보전금을 지급하기 위한 예산 23조원을 추경에 담았다.
저소득층에 가구당 최대 100만원의 생활안정지원금을 지급하는 예산 1조원,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프리랜서와 법인택시·전세버스 기사 등에 100만∼200만원을 지급하는 예산 1조원도 추경에 포함했다.
코로나19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불가피한 측면은 있지만, 25조원에 달하는 현금을 시중에 푸는 것은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현금성으로 돈을 나눠주면 지출이 늘고 수요가 늘어 물가 상승 압력이 조금 커질 수 있다"며 "공약을 지키고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것은 좋지만 경제에 부담이 덜 가도록 점진적으로 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 대한 600만원 지원금 지급을 공약했다.
인수위는 경제 영향과 재정 상황을 고려해 지원금을 '최대 600만원' 차등 지급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공약 파기 논란이 거세지자 당정은 결국 '최소 600만원' 지급안을 추경에 담았다.
이번 추경으로 금리 인상기에 현금을 추가로 풀면서 통화·재정정책 '엇박자'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도 있다.
추 부총리 본인도 지난해 6월 23일 기재위에서 "인플레이션 걱정 때문에 금리 인상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재정은 한발 더 나아가 기름 붓듯이 확장적으로 더 방만하게 간다"며 "거시정책 조합에서 보면 서로 엇박자가 나는 것 아닌지 몹시 우려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다만 최 차관은 "(소상공인 손실보전금과 같은) 이전지출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정부 소비나 정부투자의 3분의 1 내지 5분의 1 수준이어서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며 "물가에 일부 영향을 줄 수 있겠으나 충분한 추경을 통해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지원하는 것이 그보다 더 절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라면 물가를 자극하겠지만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은 소비로 이어지기보다는 채무 상환 등에 쓰이기에 바로 물가 상승 압력을 제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charg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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