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 당선되자 마자 90세 추기경 체포..홍콩 '공안통치' 강화 우려
[경향신문]
홍콩 가톨릭 지도자인 조셉 젠(陳日君·90) 추기경 등 민주진영 인사 4명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홍콩에서 경찰 출신 첫 행정장관의 당선이 확정된 지 며칠 만에 이들에 대한 전격적인 체포가 이뤄지면서 ‘공안 통치’ 강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젠 추기경이 지난 11일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밤 늦게 보석으로 석방됐다고 12일 보도했다. 홍콩 경찰은 전날 젠 추기경 외에도 마거릿 응(吳靄儀) 전 입법회 의원과 가수 데니스 호(何韻詩), 후이포컹(許寶) 전 링난대 교수 등 3명을 같은 혐의로 붙잡아 조사한 뒤 보석으로 풀어줬다.
경찰은 전날 밤 이들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은 채 “45∼90세 남녀 각 2명을 보안법상 외국 세력과의 결탁 혐의로 10∼11일 체포했다”고만 밝혔다. 경찰은 이들이 ‘612 인도주의지원기금’의 신탁관리자라면서 “외국 조직에 홍콩에 대한 제재를 촉구해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4명 모두 보석으로 풀려나지만 국외 여행을 위한 서류가 압류될 것이라며 “체포 작전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612 인도주의지원기금은 2019년 홍콩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 기소 위기에 처하거나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기금은 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당국이 기부자와 수령인 등에 대한 정보를 넘기라고 요구하자 지난해 10월 자진 해산했다.
젠 추기경은 천주교 홍콩교구 제6대 교구장을 지낸 교계 원로로 그동안 홍콩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홍콩보안법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여왔다. 로이터통신은 “젠 추기경은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제정하고 본토에서 일부 가톨릭 주교를 박해한 것을 포함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아래 중국에서 권위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것을 비판해 왔다”고 전했다. 응 전 의원은 2019년 시위와 관련해 불법 집회 조직·가담 혐의로 이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또 가수인 호는 2019년 7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홍콩 인권 상황을 비판하고 중국을 회원국에서 퇴출할 것을 요구하는 연설을 했다. 후이 교수는 지난해 경찰이 612 인도주의지원기금 수사에 착수한 직후 대학에서 해임됐다.
홍콩 안팎에서는 경찰 출신 ‘보안통’인 존 리(李家超) 전 정무부총리가 지난 8일 행정장관에 당선된 직후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 작전이 이뤄지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리 당선인은 보안국장을 지내며 2019년 시위 강경 진압과 홍콩보안법 시행에 앞장선 인물로 중국 정부의 낙점을 받아 행정장관 선거에 단독 출마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성명을 통해 “평화적인 활동을 이어 온 젠 추기경을 체포한 것은 지난 2년 간 이어진 홍콩 내 인권 침해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최악의 사례”라며 “차기 정부에서 인권에 대한 탄압이 더 심각해질 것이란 불길한 징조”라고 밝혔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민주 활동가, 학자, 종교 지도자를 보안법으로 체포함으로써 홍콩 당국은 반대파를 억누르고 보장된 권리와 자유를 약화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임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정책 고위 대표도 성명에서 “홍콩 반환협정과 홍콩 기본법에 보장된 기본적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젠 추기경이 체포됐다는 소식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면서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징|이종섭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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