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새 97% 증발 '루나 쇼크'.. 다른 스테이블코인도 불안하다
팔고 싶어도 3주 기다려야
다른 몇몇 코인 역시 루나와 같은 문제점 안고 있어
전문가 "특정 기준 통과한 사업자에게 발행하게 해야"
일주일 만에 시가총액 97% 넘게 증발한 ‘루나 코인 쇼크’ 이후 가상화폐 시장이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안정성을 보장한다던 일명 ‘스테이블코인’ 중 시가총액 기준으로 10위 안에 진입하기도 했던 코인이 폭락하자, 투자자들은 다른 코인들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코인 쇼크’를 막기 위해서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루나(LUNA)는 스테이블코인 테라(UST) 가격 안정화를 위해 만들어진 채굴 코인이다. 알고리즘을 이용해 UST 고정 가치가 1달러를 유지하도록 설계됐다. 루나와 UST는 애플 엔지니어 출신 권도형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가 발행하는 가상화폐로, UST는 한때 시총이 180억달러(약 23조원)까지 늘어나며 스테이블코인 중 규모 기준으로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UST가 1달러 이하로 떨어지는 디페깅(Depegging· 달러와의 가치 유지 실패 현상)이 일어나자 루나 역시 함께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루나는 한때 가치가 0.18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일주일 전(87달러 선)과 비교했을 때 그 가치가 99.8%나 줄어들었다.
루나의 끝없는 몰락은 설계 알고리즘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루나 시스템은 테라 가격 유지를 위해 설계됐다. 만약 테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가격이 오르면, 루나는 소각돼 가격을 안정시킨다. 반대로 테라 가격이 1달러보다 떨어지면 시스템은 테라를 소각하고 루나를 더 발행한다. 유통되는 테라 양을 줄여 1달러를 유지시키기 위함이다. 쉽게 설명하면 미국이 통화 가치 유지를 위해 달러를 찍어내고 거둬들이는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테라와 루나 가격이 모두 떨어질 때 생겼다. 최근 글로벌 금리 인상으로 인해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이 테라를 판매하자 루나 가격도 함께 내려갔다. 만일 테라 소비자들이 1달러를 보장받으려면 루나를 받아서 팔아야 하나, 루나 가격도 떨어지니 더 큰 손해가 발생하기 전에 앞다퉈 루나를 빨리 받아 팔려는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테라 가격이 하락하니 루나 가격이 떨어지고, 또 루나가 하락하자 테라도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루나 시스템이 언젠간 터질 ‘시한폭탄’과 같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올 것이 왔다는 이야기인데, 수요를 늘리기 위해 고금리로 상품을 제공한 것이 독이 됐다는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테라는 가격 유지를 위해 탈중앙화(Defi·디파이) 플랫폼에 UST를 예치하면 약 연 20%의 이자를 주는 방식을 택했다”며 “이는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불안한 구조였는데 최근 금리가 오르면서 일이 터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루나를 스테이킹한 일부 투자자들은 눈 뜨고 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스테이킹이란 보유한 가상화폐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예치한 뒤, 이를 통해 보상으로 가상화폐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스테이킹을 한 경우 예치한 암호화폐를 판매하기 위해선 이를 풀기 위해 일정 기간이 필요하다. 루나는 3주가 걸린다. 3일 만에 90% 넘게 증발됐지만, 최악의 경우 빼고 싶어도 최소 18일에서 최대 21일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알고리즘 코인의 허점이 발견되자 업계에서는 다른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똑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개 스테이블코인은 루나와 비슷한 알고리즘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웨이브와 같은 스테이블코인도 안심할 수 없다”며 “루나가 스테이블코인의 대장 격이기 때문에 루나 사태 여파는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관계자 역시 “이번 루나 발 쇼크는 모든 코인 프로젝트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루나가 쏘아 올린 공이 어느 만큼 영향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이전부터 제기돼왔다. 스테이블코인이 19세기 미국에 중앙은행이 없을 당시 상업은행이 자체적으로 발행하던 ‘은행권’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6월 개리 고튼 예일대 교수와 제프리 장 조지타운대 교수가 공동 집필한 ‘살쾡이 같은 스테이블코인 길들이기(Taming Wildcat Stablecoins)’ 보고서는 이 같은 주장을 담고 있다. 고튼 교수는 금융경제학 전공이고, 장 교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자문 변호사이면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에서 일하는 등 금융 규제 업무에 정통한 인물이다.
이들은 보고서를 통해 19세기 상업은행들은 자체적인 지급준비금을 거론하며 자사 은행권의 안정성을 내세웠지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지급불능 사태에 자주 직면했으며 나아가 연쇄적인 지급 불능에 따른 금융공황도 빈번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스테이블코인 역시 약간의 지급준비금을 가지고 행하는 사업으로 봤다.
국내 전문가들도 해당 의견에 동의했다. 그들은 루나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건설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는 “상품권을 발행하는 것처럼 스테이블코인 발행에도 특정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게 일정 예치금을 확보하게 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특정 기준을 맞춘 이들에게 발행하게 한다면 ‘루나 사태’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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