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밀워키' 광고를 보다가 문득..

조성관 작가 2022. 5. 1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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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워키 브루어스 로고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밀워키(Milwaukee).

미시간호(湖)에 면한 위스콘신주의 도시, 아메리카 원주민 말로 '좋은 땅'이라는 뜻이다.

내 인생에서 '밀워키'를 처음 만난 것은 프로야구를 통해서다. 1982년 개막한 프로야구에서 원년 우승팀은 OB 베어스. 현재의 두산 베어스다.

KBO리그 첫해 MVP가 투수 박철순이다. 박철순은 1982년 역사적인 프로야구 첫해에 여러 가지 진기록을 남겼는데, 그중에서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이 22연승이다.

야구장에서 박철순의 모든 행동은 주목받았다.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최초의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박철순은 밀워키 브루워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1980~1981년 1년을 뛰었다.

하지만 '빅 리그'의 마운드를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채 돌아왔다. 비록 메이저리그 무대를 경험하진 못했지만, 그가 야구장에서 보여준 모든 움직임은 곧 선진 야구의 아우라로 비쳤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나는 그렇게 박철순으로 인해 '밀워키 브루어스'라는 메이저리그 팀을 알게 되었다. 밀워키 브루어스는 1969년에 창단되어 1970년부터 MLB 아메리칸 리그에 참여했다. 신생 약체팀이다 보니 당시 한국의 박철순에게까지 기회가 주어졌으리라.

내가 맥주를 좋아했다면 밀워키 브루어스(Brewers)에서 밀러(Miller) 맥주로 자연스럽게 관심과 기호가 옮겨갔을지도 모른다. 프로야구팀 이름에 '맥주 양조회사들'이라니?

밀워키의 주류 민족은 독일계다. 백인 44.8%, 아프리카계 40%, 아시안 3.5%. 이중 백인을 다시 출신지별로 세분하면 독일계 20.8%, 폴란드계 8.8%, 아일랜드계 6.5%, 이탈리아계 3.6% 순이다. 이러한 비율은 미국 전체로 확대해도 비슷하다.(세계인문여행 2020.11.5 '미국에서 독일계가 1위인 까닭?' 참조)

19세기 들어 대서양을 건너온 독일인들이 미대륙 중앙부로 흘러 들어갔다. 미국 동부 지방은 이미 영국계와 아일랜드계가 차지하고 있어 후발 이민자들이 독자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기가 힘들었다. 이들은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의 용병으로 참전했다가 중앙부에 눌러앉은 독일계의 연고지를 찾아 내륙으로 찾아들었다. 맥주의 천국에서 신대륙에 온 독일인들이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은 맥주 제조였다. 이들은 본국에서 배운 맥주제조 기술을 미국 땅에서 다시 꽃피우려 했다.

밀러 맥주 로고

비옥한 미국 중부 지방은 맥주의 원료인 호프(hops)를 재배하는 데 천혜의 환경이었다. 유럽산 호프씨를 들판에 뿌려놓기만 하면 저절로 자라 열매를 맺었다. 맥주는 호프의 성숙한 암꽃이삭으로 제조한다. 무궁무진한 질 좋고 값싼 원료를 바탕으로 1840년대부터 본격적인 맥주 제조가 시작됐다. 1856년까지 12개의 맥주 회사가 밀워키에서 미국 시장을 놓고 각축을 벌였다. 밀워키산 맥주가 기차에 실려 미국 동부로 퍼져나갔다.

밀워키는 1981년까지 세계 최대의 맥주 양조 능력을 자랑했다. 세계 최대의 브루어리(양조장)가 네 개나 됐다. 밀러, 팝스트, 쉴리츠, 블라츠. 밀워키는 곧 독일 맥주의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였다.

이들 '빅 4' 중 세월의 부침 속에서 살아남은 것이 밀러(Miller)였다. 밀러 맥주는 옥수수 맛이 혀끝에서 미세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옥수수를 발효과정에 혼합해 밀워키 맥주 고유의 향을 얻었다. 밀러는 생산량에서 미국에서 2번째다.

그러니 밀워키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야구팀에 '브루어스'가 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밀워키 브루어스의 홈구장 이름이 밀러 파크(Miller park)다.

토론토, 미네소타, 애리조나, 시카고…

MLB에는 밀워키 브루어스처럼 원주민 어원을 팀 이름으로 쓰고 있는 구단이 여러 개다. 류현진이 선발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아메리칸 리그의 토론토 블루제이스. 토론토는 '풍부한 곳' '물속에 나무가 서 있는 곳'이라는 원주민 말에서 기원한다.

미네소타 트윈스(Minnesota Twins)는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를 연고지로 하는 팀이다. 미네소타는 원주민 다코타 부족의 언어로 '맑고 푸른 물'이라는 뜻. 미네소타는 북미에서 호수가 가장 많은 주다. 1만1842개나 된다. 그래서 미네소타의 별명이 '만개 호수의 땅'이다. 미네소타주 자동차 번호판에는 'Land of 10,000 Lakes'라는 별칭이 쓰여 있다.

한때 김병현이 투수로 뛰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Arizona Diamondbacks). 다이아몬드백스는 사막에 사는 방울뱀을 지칭한다. 애리조나는 역시 원주민의 말에서 기원한다. 이 지역의 소노라 사막에 살던 원주민 부족의 언어로 '작은 봄'을 뜻하는 말이 '알리 소낙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알리 소낙'을 스페인어로 'Arizona'로 표기하면서 '애리조나'라는 지명이 세상에 태어났다.

시카고에는 메이저리그팀이 두 개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시카고 컵스. '시카고' 역시 원주민 언어에서 기원한다.

조지 워싱턴과 로마의 정치가 킨킨나투스

이렇게만 하고 넘어가면 신시내티 레즈(Cincinatti Reds)를 빠트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겠다. 1869년 미국 프로야구 최초의 팀 레드 스타킹스(Red Stockings)가 신시내티에서 태어난다. 얼핏 들으면 신시내티도 원주민 말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기 쉽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어원 지명과는 거리가 멀어서다.

신시내티는 라틴어가 그 뿌리다. 고대 로마의 군사 지도자이자 독재관 루시우스 킨킨나투스(Lucius Cincinatus 519~430 BC). 외적의 침략으로 백척간두에 놓인 로마를 구한 후 막강한 권력을 포기하고 표표히 초야에 묻힌 정치가. 로마제국의 가치를 구현한 정치인의 표상으로 기려지는 인물이다.

밀워키 전동공구 로고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인들은 공화정을 실현한 후 스스로 권력에서 내려온 조지 워싱턴을 고대 로마의 킨킨나투스에 비유했다.

독립전쟁 직후 이 도시의 지명은 로잔빌. 이 지역의 총독으로 부임한 아서 클레어는 조지 워싱턴 보좌관 출신. 그는 도시 이름을 바꾼다. 조지 워싱턴에 대한 존경의 표현으로 킨킨나투스를 영어식으로 바꾼 게 신시내티다.

전동공구 밀워키 광고가 TV와 인터넷에 갑작스럽게 노출 빈도가 많아졌다. 아마존에서 밀워키를 직구해 공구 사용 후기를 인터넷에 올리는 소비자들도 자주 보인다. 전동공구 밀워키에서 프로야구팀 '밀워키 브루어스'를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과 캐나다에는 의외로 원주민 말에서 기원한 지명들이 많다. 이들 지명의 어원을 파고드는 일은 북미사의 미시사(微示史)다. 지명은 역사의 타임캡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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