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이란 무엇인가?..심심함과 외로움 달래주는 음악

서정민 2022. 5. 1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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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250 음반 '뽕' 뜨거운 반응]
케이팝·힙합 프로듀서가 내놓은
'뽕'에 대한 몇년간 고민 결과
트로트 무관심 평론가도 극찬
"나만 외로운 게 아냐, 위안 얻길"
트로트와 첨단 전자음을 결합한 앨범 <뽕>을 발표한 디제이 겸 프로듀서 250. 비스츠앤네이티브스 제공

“트로트 틀어주는 효도 관광버스인 줄 알고 가볍게 탑승했는데 들어보니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러 가는 우주선이었음.”(멜론 아이디 ‘가끔이상해짐’ 댓글)

이런 감상평을 부르는 음악은 대체 어떤 걸까? 앨범 제목은 <뽕>. 아티스트는 250. 지난 3월 조용히 발매됐다. 그런데 반응이 심상찮다. 트로트엔 관심 없던 평론가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극찬한다. 영국 전자음악 전문지 <디제이(DJ) 맥>과 평론지 <와이어>도 주목하고 나섰다.

250은 디제이 겸 프로듀서다. 삐삐 쓰던 시절 본명 이호형을 나타냈던 숫자에서 따왔다. 사람들은 ‘이오영’이 아니라 ‘이오공’이라 읽는다. 래퍼 이센스 등 힙합과 보아, 엔시티(NCT) 127, 있지 등 케이팝 음악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트렌드의 최전선을 걸어온 그가 갑자기 ‘뽕’이라니.

트로트와 첨단 전자음을 결합한 앨범 <뽕>을 발표한 디제이 겸 프로듀서 250. 비스츠앤네이티브스 제공

발단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소속사 대표가 솔로 앨범을 만들어보자며 “제목은 <뽕> 어때요?” 하고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제안했다. “저는 태생이 촌스러운 사람이에요. 대놓고 ‘뽕’이라 하면, 멋있는 척, 있는 척할 필요 없이 하고 싶은 거 맘껏 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최근 서울 삼각지에 있는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난 250이 말했다.

수락은 했지만,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뽕짝’은 무엇인가? 무엇이 ‘뽕’으로 느끼게 하나? ‘신바람 이박사’의 뽕과 나의 뽕은 어떻게 달라야 하나? 물음표를 한가득 안고 고속도로부터 탔다. 휴게소에서 ‘고속도로 뽕짝 메들리’를 사고, 전국 방방곡곡 지역축제를 누볐다. 이런 과정을 담아 ‘뽕을 찾아서’라는 유튜브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경남 합천 어느 축제에 가니 트로트 음악에 비키니 수영복 댄서도, 아기 안은 엄마도, 동네 꼬마들도 춤을 췄다. 어느 시골에선 외국인 영어 강사들이 파티를 벌이며 튼 전자음악에 마을 할아버지·할머니들이 특유의 어깨춤을 췄다. ‘우린 머릿속으로 음악을 나누지만, 사람들은 비트만 있으면 똑같이 춤추는구나. 꼭 한국적인 걸 좇을 필요도, 외국 것을 피할 필요도 없구나. 그냥 내 감을 믿고 하고 싶은 걸 하면 되겠구나.’ 몇 년에 걸친 지난한 고민에 마침표를 찍었다.

‘신바람 이박사’ 음악을 듣다가 사운드를 연주한 사람이 궁금해졌다. 이박사 집에서 만난 음악적 조력자 김수일은 단순한 뽕짝 반주자가 아니었다. 자신처럼 아티스트 뒤에서 묵묵히 음악을 만든 프로듀서였다. 동질감을 느낀 250은 그의 목소리로 앨범 문을 열고 싶었다. 미발표곡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70대 중반의 노인 김수일이 직접 불러줬다. “깊은 잠을 깨고 나니 모든 것이 꿈이었네~”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살아온 인생의 무게가 느껴졌다. 이를 그 자리에서 녹음한 것이 앨범 첫 곡 ‘모든 것이 꿈이었네’다. 노래를 다 부르고는 “에잇, 내가 가수가 아니니까” 하고 쑥스러워하는 목소리까지 고스란히 들어갔다. “제 어머니부터 힙합 래퍼들까지 모두 이 노래를 좋아해요. 이분의 솔(영혼)이 덩어리째 느껴진다면서요.”

트로트와 첨단 전자음을 결합한 앨범 <뽕>을 발표한 디제이 겸 프로듀서 250. 비스츠앤네이티브스 제공

앨범에는 관광버스 음악을 추구한 타이틀곡 ‘뱅버스’, 이박사의 추임새를 넣은 ‘사랑이야기’, 가야금과 전자음이 배틀처럼 주고받는 ‘바라보고’, 신중현과 엽전들의 원곡을 재해석한 ‘나는 너를 사랑해’, 한국을 대표하는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의 끈적한 연주가 매력적인 ‘로얄 블루’ 등 과거와 첨단을 결합한 11곡을 담았다.

앨범 마지막 곡에도 사연이 있다. 어릴 적 티브이(TV)에서 본 만화 <아기공룡 둘리> 주제가를 실제 가창자가 부르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봤다. “(원곡 가창자) 오승원씨가 아들 졸업식인가에서 ‘요리 보고 저리 봐도’ 하고 부르는데, 목소리가 옛날 그대로인 거예요. 저는 사실 둘리 노래가 왠지 슬펐어요. 그 느낌의 목소리를 꼭 넣고 싶어서 이분을 3년간 수소문해 결국 찾았죠.”

오승원을 위한 곡을 만들고 나니 가사가 고민이었다. 어릴 적 자신을 슬프게 만든 또 다른 노래 ‘타타타’(김국환)가 떠올랐다. 알고 보니 남편인 작곡가 김희갑과 함께 숱한 명곡을 만들어낸 작사가 양인자의 가사였다. 만나서 곡을 들려드리니 작사 의뢰를 선뜻 수락했다. 그렇게 해서 앨범 문을 닫는 마지막 곡 ‘휘날레’가 탄생했다. 250은 “엄마를 찾는 둘리의 슬픈 만화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의 느낌을 이 노래에 담고 싶었다”고 했다.

트로트와 첨단 전자음을 결합한 앨범 <뽕>을 발표한 디제이 겸 프로듀서 250. 비스츠앤네이티브스 제공

그는 이 앨범이 “텅 빈 시간에 느끼는 심심함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음악이었으면 한다”고 했다. 자신 또한 그런 시간에 이 음악으로 위로받았기 때문이다. “인생 자체가 외로움인 것 같아요. 태어나면서부터 혼자잖아요. 외로움을 느낄 때, 바로 그런 외로움을 담은 <뽕>을 들으면서 ‘나만 외로운 게 아니구나’ 하는 공감과 위안을 얻었으면 해요.”

공연도 구상 중이다. “앨범이 컴퓨터를 이용한 연주곡 위주라서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멋있는 척할 필요 없이 누구든 춤출 수 있는 그런 공연을 생각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뽕>의 ‘휘날레’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인지도 모른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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