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하다"..반도체 왕국 발목 잡은 美와 협력 속내 밝힌 日

박성규 기자 2022. 5. 12.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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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반도체 분야에서 손을 잡는 것에 대해 어쩐지 기이한 운명을 느낀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한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경제산업상은 미일 간 반도체 협력에 관한 기본 원칙을 발표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말했다.

하기우다 산업상은 "미국의 압력 이후 일본은 제대로 대응을 못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일본 반도체 쇠퇴로 연결됐다"며 "'메이드 인 재팬'으로 세계 반도체를 석권하려는 도전은 실패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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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산업상 "미 압력 대응 못해 반도체 산업 쇠퇴"
악연에도 中 견제 등 이해 관계 맞아 30여년만에 반도체 동맹
"일 반도체 미국에 위협 안돼 협력 가능" 해석도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경제산업상(왼쪽)과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연합뉴스
[서울경제]

“미국과 반도체 분야에서 손을 잡는 것에 대해 어쩐지 기이한 운명을 느낀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한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경제산업상은 미일 간 반도체 협력에 관한 기본 원칙을 발표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말했다.

‘기이하다’는 표현은 듣기에 따라 자칫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미국과 첨단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해 2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반도체 개발과 양산에 협력하기로 한다고 밝힌 상황에서 일본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이가 이런 발언을 한 이유는 뭘까.

닛케이는 이에 대해 반도체를 둘러싸고 미일이 대립해 온 과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미국과 일본은 반도체 패권을 놓고 갈등을 겪었다.

1980년대 후반 일본 반도체 업체들의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자 미국에선 일본 위협론이 제기됐다.

실제 1985년 미국 반도체 협회는 불공정 무역 관행에 보복할 수 있는 통상법 301조를 근거로 일본을 제소했다.

이듬해 양국은 일본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반도체 가격을 감시할 수 있는 내용이 핵심 골자인 반도체 협정을 맺었다.

일본 입장에선 불리한 조건이었다. 이후에도 미국은 일본의 시장 개방과 대미 수출 억제를 계속 요구했다.

미국의 압박은 통했다. 일본 기업은 점차 경쟁력을 잃었고, 일본 반도체 점유율은 10% 정도까지 내려갔다.

하기우다 산업상은 “미국의 압력 이후 일본은 제대로 대응을 못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일본 반도체 쇠퇴로 연결됐다"며 “'메이드 인 재팬'으로 세계 반도체를 석권하려는 도전은 실패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일본 입장에선 30여년 만에 발목을 잡은 국가와 다시 손을 잡게 된 셈이다. 과거의 적이 현재의 동맹이 된 상황에 대해 하이우다 산업상이 기이하다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그럼에도 일본이 미국을 선택한 이유는 반도체의 무게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는 코로나 여파 등으로 반도체 공급망 붕괴를 목도했다. 휴대폰에서부터 군사장비까지 반도체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보니 공급망에 문제가 생길 경우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코로나 장기화는 미일 양국 모두에게 반도체가 국가 안보를 지키는 핵심 키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한 촉매제로 작용한 것이다.

중국 견제도 미일 반도체 동맹을 맺은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미국은 반도체 굴기에 나선 중국을 가만 둘 수 없고, 일본 역시 반도체 핵심 기술을 빼앗으려는 중국의 야욕을 저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이번에 작성된 협력서에서도 중국을 염두해 둔 문구가 들어있다.

협력서에는 양국이 투명성, 자유무역을 중시하며 공급망을 강화하겠다는 목적을 공유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한편으로는 이번 협력이 일본의 반도체 산업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분석도 나온다.

닛케이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첨단기술 보호를 강화하고 있는데, 이 모습은 한때 미국이 일본에 엄격한 요구를 했던 것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며 “미국이 일본과 협조하는 것에 대해 일본 산업이 지금은 미국에 있어서 위협에 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박성규 기자 exculpate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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