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길 이야기] 승객에게 감사

김경태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2022. 5. 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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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항공기 출발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조종실은 바빠진다. 연료가 충분한지 확인하고 관제탑에 비행 허가를 요청하느라 분주하지만, 나는 잠시나마 조종실 창문 너머 탑승구로 눈길을 돌린다. 신혼부부가 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걸어오는 모습, 연세가 지긋하신 노부부의 미소 그리고 학교를 벗어난 해방감에 살짝 흥분한 아이들의 장난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지금까지 내가 모신 승객은 몇 분이나 될까? 매 비행마다 승객 수를 일일이 기록하지 않으니 정확하게 계산할 수는 없지만, 비행당 250분을 모시고 월 6회 비행한 것으로 계산하면, 월 1500명, 연 1만 8000명, 그럼 지금까지 45만 명 이상 모신 것 같다.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정말 많은 분을 만났다. 승객 한 분 한 분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몇몇 사건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어느 신혼부부 이야기다. 출발시간이 지나도록 승객이 탑승하지 않아서 출발이 지연됐다. 다급해진 운송직원이 공항 구석구석을 뒤지며 뛰어다닌 끝에 인사불성이 된 승객을 모시고 왔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신랑이 쓰러지고 말았단다. 신혼부부는 그날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했다. 그 부부가 다음 날 신혼여행을 갔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평생 부인에게 놀림을 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신실한 무슬림 승객의 안타까운 사건도 기억에 남는다. 무슬림은 라마단 기간에는 야간에만 식사를 한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물도 한 모금 마시지 않는다. 그날은 대서양을 동진하는 비행이었는데, 비행하는 내내 해가 떠 있었다. 그 승객은 비행기 안에서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의 가족들은 14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부터 금식을 했으니까 실제로는 20시간 이상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것이다. 해 지는 시각을 계속 물어보는 사무장의 목소리에서 승객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었다.

황당한 환자 사건도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 사무장으로부터 환자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환자가 암 수술을 하고 퇴원하자마자 비행기를 탔다는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환자는 잠시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환자 보호자는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직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객실 승무원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단다. 어떤 암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퇴원 당일 20시간 동안 비행한 환자는 그 승객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비행기에서 위험한 행동을 하는 승객이 점점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해외에서는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비행기에서 과음을 하고 주위 분들을 불편하게 하는 승객, 승무원에게 언어적 또는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는 승객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심한 경우에는 비행기에서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안전을 저해하는 승객을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이지만,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몇몇 예상치 못한 일을 제외하면 나는 지금까지 대과 없이 비행을 한 것 같다.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신 승객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좌석벨트 등이 켜지면, 비행기가 흔들리지 않더라도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 주신 승객과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도 '좌석벨트 등이 꺼질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객실승무원의 지시에 협조해 주신 모든 승객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돌풍이 몰아쳐서 착륙하지 못하고 복행 할 때도 이해해 주신 승객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비행기가 게이트에 도착해서 좌석벨트 등이 꺼질 때까지 앉아 계시던 승객에게도 감사드린다. 지난 시간 동안 함께 했던 모든 승객분들이 많이 그립고 정말 감사했음을 깨닫게 되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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