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실패한 정권과 영상 송덕비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2022. 5. 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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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조선 말 고부 군수 조병갑(趙秉甲)은 태인 현감을 지낸 부친 조규순의 공적비를 세우기 위해 일천 냥을 백성들로부터 뜯어갔다. 조병갑의 만행은 '농학농민운동'이 일어난 원인 중 하나였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던 가렴주구(苛斂誅求) 수령들이 떠날 때 뻔뻔스레 셀프 송덕비를 세우고 가는 경우도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는 2022년 5월 9일로 끝났다. 하지만 87년 직선제 개헌 후 퇴임하면서 이렇게 공격적인 자기홍보를 한 대통령은 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대통령들은 "임기 중 공과(功過)는 후대 역사가들이 내릴 것"같은 애매하고 고급스런 자세로 임기를 마쳤다.

청와대는 3월 22일부터 '문재인 정부 5년 보고드립니다'라는 내용을 시작으로 동영상 5부작을 공개했다. '미디어 오늘'에 따르면 편 당 제작비는 1억 4000만 원이라고 한다. 당연히 이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들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1부는 '오직 평화입니다', 2부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3부 '위기에 강한 나라', 4부 '결정적 순간들'이다. 마지막 '특별편'도 있다. 참고로 2부 영상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에서 '아무' 란 일본이다. 문 정권은 끝날 때까지 '토착왜구' 프레임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 2부에 자주 나오는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남편은 일본 도쿄 중심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참으로 아이러니다. 뒤를 이어 4월 25일부터 이틀 동안 손석희 앵커와 나눈 '퇴임 전 마지막 인터뷰'가 JTBC에서 방영됐다. 손석희 사장의 태블릿 PC 보도는 문재인 정권을 열어준 신호탄이었다. 철저한 기획, 반론과 재반론이 뒤섞인 대화, 콘텍스트에 적합한 통계, 그래픽까지… 웰 메이드 인터뷰였다. 하지만 역시 제작비는 세금으로부터 나왔다. 손석희 사장은 2019년 최서원(최순실) 씨로부터 고소당한 바도 있다. 그녀의 딸 정유라는 최근 조국, 김어준, 안민석 등을 고소했다.

셀프 찬양 영상에서 주장하는 것 같이 문재인 정권은 성공한 권력이었을까? 1987년 이후 좌(左), 우(右) 진영은 10년 주기로 권력을 주고받았다. 5년 만에 반대 진영에 정권 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권 말까지 40% 유지하는 수상쩍은 지지율보다 이점이 그가 더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결국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은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해전사(해방전후사의 인식)적 얄팍한 신념을 가진 집단이 권력을 찬탈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동체를 세우는 쪽보다 파괴하는 편이 더 익숙한 집단이다. 운동권 586은 한반도에서 최초로 배고픔을 겪지 않은 세대다. 올해 환갑을 맞는 임인년(壬寅年) 생이 태어나던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했고, 같은 해 중국에서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 시작됐다. 역사의 명징한 결과비교를 애써 부정하기에 문재인과 운동권 586은 배은망덕(背恩忘德)하다.

적폐 청산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문재인 정권에 역설적으로 '혁명가'는 없었다. 혁명가는 절제, 금욕, 이타적이며 수도자 같은 품성을 가져야 한다. 시베리아 유형 중에도 끊임없이 체력을 단련했던 볼셰비키들이 러시아 혁명을 일으켰다. 586 정치인들의 삶을 한 꺼풀 벗기면 벌거벗은 자본주의적 욕망만 드러난다. '시장경제'의 폐단을 비판하지만 펀드, 부동산, 코인에 집착한다. '반미', '미제(美帝)'는 외치지만 자녀들은 (남의 돈으로) 미국 대학에 보낸다. 공정을 외치지만 입시와 땅 투기에 온갖 변칙적인 짓거리를 서슴없이 한다. 이런 후안무치(厚顔無恥), '내로남불' 집단이 시대의 공감을 받을 수 없다.

세계사를 볼 때 건국 70년이 넘은 국가에서 이젠 좀 어른스러운 권력이 나와야 한다. 임기 끝내며 거액 제작비로 영상 송덕비를 세우고 탁현민 같은 측근이 '물어뜯으며' 퇴임 후를 지켜야 하는 수준의 권력자는 다시 나오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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