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대출 느는데..배드뱅크 설립 무산?

정옥주 2022. 5.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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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자영업자 대출의 가파른 증가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배드뱅크'를 설립하려던 정부의 계획이 사실상 무산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개인사업자 대출과 가계대출을 합친 '자영업자 대출'은 지난해 말 기준 909조6000억원으로, 2012년 집계 이래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년(803조5000억원) 대비 13.2%,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말(684조9000억원) 보다는 32.7%나 급증한 규모다. 지금과 같은 증가 추세가 이어진다면, 자영업자 대출은 올해 1000조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올해에도 자영업자 대출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가계대출은 금리인상과 강도 높은 가계대출 규제 등으로 올 들어 증가세가 둔화되기 시작했지만, 개인사업자 대출은 지난달까지 매달 2조원 넘게 늘고 있다.

전날 한은이 발표한 올해 '4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은 한 달 전 보다 1조2000억원 늘어 5개월 만에 증가 전환했지만, 증가폭은 2004년 관련 속보 작성 이후 가장 작았다. 반면 자영업자가 주로 빌리는 개인사업자대출은 전월 대비 2조6000억원 늘어난 433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코로나19 확산 이후 대출에 의존해 연명하는 자영업자들이 급속도로 늘어났지만, 잠재 부실 규모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어 금융지원 조치가 종료되는 오는 9월 이후 부실이 속출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4월부터 시행 중인 '대출 원금상환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가이드라인'에 따라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받고있는 대출은 지난 1월 말 기준 133조4000억원(70만4000건)에 이른다.

이에 정부는 앞서 만기연장·이자상환 유예 종료에 따른 부실 처리를 정부와 은행·소상공인진흥공단이 출자한 '배드뱅크'에서 전담토록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3일 발표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 과제'에는 배드뱅크 설립에 대한 내용은 제외돼 배드뱅크 설립이 무산된 것이 아니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신 국정과제에는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방안으로 담보·보증대출, 부실우려 채권까지 종합·선제적으로 지원하는 긴급구제식 채무조정을 추진하고, 대환보증 신설 등 맞춤형 금융을 공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은행들이 사상 최대 이익을 담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배드뱅크라는 용어를 활용해 따로 기관을 설립하거나 하는 형태는 아닐 것 같다"며 "금융기관 건전성의 측면에서의 접근 보다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채무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개인 채무조정을 강화하는 형태로 논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장관 후보자도 전날 인사청문회에서 "인수위에서 처음으로 과학적 추계로 54조원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고 현금 지급과 대환대출, 특례 대출 등으로 가보은 안을 짰다"며 "나온 결과를 좀 보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중기부 차원에서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알부 전문가들도 현 시점에서는 배드뱅크 설립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배드뱅크란 부실자산 및 채권을 사들여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기관을 말한다. A은행이 B의 부동산이나 설비물 등을 담보로 B에게 대출해 줬다가 B가 부도가 난 경우, 배드뱅크(bad bank)에서 A은행으로부터 B의 담보물을 넘겨받아 이를 담보로 유가증권(자산담보부채권)을 발행하거나 팔아 채무를 회수하는 방식이다. 은행의 건전성이 악화됐을 때 부실자산을 흡수해 금융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는 일종의 '소방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들의 실적이 최고치를 찍고 있고, 충당금을 대거 쌓으며 부실 대비에 선제적인 나서고 있는 만큼 굳이 나랏돈을 투입해 새로운 기관을 만들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이 지난해 말 대손충당금과 대손준비금으로 쌓은 금액은 37조6000억원으로 전년 말(35조8000억원) 보다 1조8000억원 늘었다.

또 재원 마련과 출자 방식 등을 놓고 금융기관 간 갈등의 소지가 높고,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확산되는 등의 부작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배드뱅크는 과잉 부채로 파산 등 사회적 문제가 심화됐을 때 정부가 플랜B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지, 계획을 미리 발표하고 도입하는 제도는 아니다”라며 "사전 발표는 채무자들에 돈을 갚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만 심어주는 도덕적 해이만 유발할 수 있고, 현 상황에서 효과적인 정책은 아니라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hanna224@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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