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유스토의 기도

김동규 김해대 강사 2022. 5. 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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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미사의 한 장면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Dominus vobiscum)라고 주례 사제(priest)가 말하면 신자들은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Et cum spiritu tuo)라고 답한다. 그리고 사제는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라고 말하며 당일의 복음을 낭독한다.

매일 봉독할 복음은 전례력에 따라 정해져 있지만 오늘 소개할 복음은 필자가 성호를 긋고, 성령을 청한 후에 뽑았다. 마치 제비뽑기를 하듯이.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Lectio sancti Evangelii secundum Ioannem)라고 말하면 독자 여러분께서는 오늘만이라도 ‘주님, 영광 받으소서’(Gloria tibi, Domine)라고 답하시길 바랍니다.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뽑으시어 저에게 주신 이 사람들에게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이제 이들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을 제가 이들에게 주고, 이들은 또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제가 아버지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참으로 알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주십사고 빕니다”(요한 17, 6-16)라고 복음 선포를 마친 사제가 ‘주님의 말씀입니다’(Verbum Domini)라고 하면 회중(會衆)은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Laus tibi, Christe)라고 응답한다.

복음을 듣고 묵상을 해본다. 예수님은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의 정원에서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목소리에서 어찌 유스토(Justus)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릴까. 1986년에 노무현은 부산지역 민주화 운동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송기인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유스토라는 세례명을 얻게 된다.

그런 유스토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주십사고 빕니다.”

‘미사’(missa, 영어로는 mass)는 라틴어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파견’(dismissal)을 의미하고 ‘mittere’(파견하다)의 과거 분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견한다는 의미가 된다. 파견의 의미는 미사 끝에 사제가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를 라틴어 미사 경본에서는 ‘Ite, missa est’(Go, it is dismissed. 가라, 파견되었다)로 표현한 데서 알 수 있다.

노무현 유스토 역시 ‘파견되어 미움을 샀고’, 부엉이바위 위에서 떨어져 최후를 맞이했다. 그런 그가 친구임을 자랑삼았던 문재인 디모테오(Timotheus, 문자 그대로, ‘honoring God’ 하느님을 공경하는)가 지난 9일 대통령직을 퇴임했다. 그를 위해 유스토는 어찌 기도하지 않았겠는가.


‘문재인의 운명’(북팔)에서 문재인은 이렇게 적었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문재인의 운명을 노무현은 예감하지 않았을까? 유스토의 기도는 이러할 것이다. “그를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그를 악에서 지켜주십사고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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