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尹정부가 맞닥뜨린 경제안보 위기

주춘렬 2022. 5. 1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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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현장 임금인상 요구 분출
실물경제·금융 동반침체 양상
신냉전發 고물가·저성장 우려
민·관 지혜 모아 위기극복해야

중견 식품 물류기업 S사는 이달부터 인플레이션 수당을 직원들에게 지급한다. 급여와는 별도로 직원 가족 수에 맞춰 1인당 15만원씩 더 얹어주는 식이다. 이 회사는 연 매출액 2500억원 규모에 직원이 450명 정도에 이른다. 올해 급여가 6% 이상 올랐는데도 직원들은 다락같이 오른 물가로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경영진은 직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이런 자구책을 도입했다. 직원들에겐 가뭄 속 단비였을 것이다. ‘월급 빼곤 다 올랐다’는 말이 많은 공감을 자아냈는데 이제 기발한 인플레 수당까지 등장한 걸 마냥 반가워해야 할 일은 아닌 거 같다.

산업현장 곳곳에는 유례가 드문 임금인상이 속출하고 있다. 간판 기업 삼성전자는 지난달 말 노사협의회에서 평균 임금 9% 인상에 합의했다. 직원들의 실질 평균 연봉이 1억6000만원을 웃돈다. 이도 모자라 가입률이 4% 남짓한 노조는 이번 합의가 불법이라며 15% 인상을 요구한다. 현대차와 기아 노조가 기본급 인상·성과급 지급·정년연장 등을 요구했는데 추가 부담비용이 2000억원에 육박한다. LG전자가 8.2%이고 카카오와 네이버도 15%, 10%에 이른다. 다른 대기업과 정보기술(IT)업계에 고율 임금인상이 도미노처럼 번진다. 한국노총 등 노동계도 8.5∼10%의 임금인상률을 내놓으며 ‘하투(夏鬪·하계투쟁)’를 벼르고 있다. 한국은행은 임금인상과 고물가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한다. 과도한 임금인상은 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며 산업의 골간을 망가트릴 수도 있다.
주춘렬 논설위원
경제·금융지표도 악화일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4.8%나 뛰었고 1∼4월 무역수지 적자도 66억달러에 달했다. 근 14년 만에 가장 나쁜 수치다. 주식·채권값은 급락세를 빚고 원·달러 환율도 달러당 1300원에 다가가고 있다. 성장 전망도 어둡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얼마 전 올해 한국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5%로 낮췄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경기하방 위험이 확대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경기불황에도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가실 줄 모른다.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동반침체는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빅스텝’(0.5%포인트) 금리인상,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등 악재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와 서방진영 간 경제전쟁으로 이어진 건 외교·안보갈등 탓에 에너지 무기화와 경제보복이 난무하는 경제안보 시대의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러시아를 달러결제망에서 배제한 데 이어 원유 등 에너지 금수조치도 모색하고 있다. 이러니 3차 오일쇼크를 방불케 하는 유가 폭등세가 이어지고 곡물 등 국제 원자재값도 가파르게 올랐다. 외풍에 취약한 한국경제가 직격탄을 맞는 형국이다.

미·중 간 신냉전이 몰고 올 경제충격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반도체 등 첨단기술의 글로벌 공급망 체계에서 중국을 배제한 데 이어 조만간 인도태평양경제기구(IPEE) 설립을 발표한다. 기술패권을 장악하고 촘촘한 대중 포위망을 구축하자는 의도가 깔려있다. 중국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개혁개방 이후 30여년간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약진했다. 글로벌데이터 분석기관 비주얼캐피탈리스트에 따르면 대중 무역이 가장 많은 나라는 124개국으로 대미 무역 1위국 56개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중국은 자국 중심의 공급망과 내수시장을 무기 삼아 중·장기전에 돌입할 태세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가 안보이고, 안보가 곧 경제라는 경제안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안보실 산하에 경제안보비서관이 신설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해 국가전략을 짜고 외교·안보와 산업·자원 분야를 아우르는 민·관 합동의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지난해 중국발 요소수 대란이나 자동차용 반도체공급 부족과 같은 돌발적 위기가 잦아질 것이다. 그 충격은 경제위기로 이어지며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새 정부는 경제안보 시대에 걸맞은 외교·안보·경제역량을 서둘러 키우기 바란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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