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텝에도 꺾일줄 모르는 물가..美 휘발유값 또 '사상 최고'

김흥록 기자 2022. 5. 1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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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인플레와 전쟁 선포]
■ 짙어지는 경기침체 그림자
1년새 50% 급등 갤런당 4.37弗
두달만에 역대 최고 기록 경신
치솟는 임대료도 인플레 압박
"경착륙 없이는 물가 못 잡는다"
연준 일부 '자이언트스텝' 목소리
[서울경제]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있는 한 주유소 내 주유기 가격 표시창 옆에 ‘내가 그랬어(I did that!)’라는 문구가 새겨진 조 바이든 대통령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휘발유 가격이 날로 치솟는 미국에서는 연료 가격 상승을 풍자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주유기 가격 표시창 옆에 이 스티커를 붙이는 행위가 유행처럼 확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8.3% 상승하며 미국 경제가 여전히 인플레이션 압력에 짓눌리고 있다는 점이 확인됨에 따라 물가 잡기 총력전에 돌입한 조 바이든 행정부가 난관에 봉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의 전망치(8.1%)를 웃돈 것은 물론 3월 고점(8.5%)과 비교해서도 인상 폭이 크게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정점론’이 힘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5월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 회의에서 22년 만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하는 등 각종 긴축 조치를 취하고 있음에도 치솟는 물가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연준 내부에서는 하반기 이후까지 물가가 잡히지 않으면 금리를 0.75%포인트 높이는 ‘자이언트스텝’에 나서야 한다는 매파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마국 물가의 고공 행진을 견인하는 요인은 치솟는 임금과 급등하는 에너지 가격, 높은 임대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국정 역량을 총동원해 물가 잡기에 나서겠다고 밝힌 10일(현지 시간) 미국 내 휘발유 값은 갤런(약 3.78ℓ)당 4.37달러로 치솟았다. 3월 11일 기록했던 역대 최고치 4.33달러를 두 달 만에 경신한 것이다. 1년 전의 2.97달러와 비교하면 무려 47.4%나 오른 수치다. 휴스턴의 컨설팅 업체인 리포오일어소시에이트의 앤디 리포 회장은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휘발유 소매가가 앞으로 열흘 이내에 갤런당 4.5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CPI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주거 비용도 물가를 끌어올리는 주범으로 꼽힌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내 임대료가 인플레이션을 악화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지적하면서 미국의 부동산 서비스 업체 질로우의 임대지수가 3월 말 기준 전년 대비 16.8% 상승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3월 해당 지수의 상승률은 전년 대비 2.0%에 그쳤다. 임금발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고음도 연일 울리고 있다. 실제 애틀랜타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미국의 3개월 이동 평균 중위 임금 상승률은 지난해 5월 3.0%에서 올 3월 6.0%로 뛰어올랐다. 연은이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97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물가 압박 요인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연준 내부에서는 금리 인상 폭과 속도를 끌어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키우고 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는 이날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0.5%포인트 인상이 적합한 속도”라며 “두세 번 이 같은 조치를 취한 뒤에 상황이 어떨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올해 하반기에는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는다면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더 높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달 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마친 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연준이 “0.5%를 넘어서는 인상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연준 내부에서는 더 공세적인 긴축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인플레이션 해소를 위해 중국 관세 인하를 검토하는 중”이라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소비가 늘면서 올 들어 수제품의 해외 수입이 늘고 있어 관세 완화가 물가 부담 해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최근 대중 관세 완화에 찬성하는 발언을 이어온 바 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최근 보고서는 무역 자유화로 미국 CPI를 약 1.3%포인트 또는 미국 가구당 797달러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완화 수순에 들어갔다는 시각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6일 미국 노동부가 미국의 전월 대비 임금 상승률이 전월 0.5%에서 0.3%로 상승 폭이 둔화된 점, 중고차 가격이 하락 추세인 점이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났다는 잠재적 신호라고 보도했다.

다만 통화정책과 무역 정책 등을 결합하더라도 8%대에 이르는 인플레이션을 평상시 수준으로 낮추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이슨 퍼먼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는 “경기 침체 없이 어떻게 2~3%대로 인플레이션이 회복할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역사상 이는 사례가 거의 없다”며 “물가가 하락한 사례는 모두 경착륙(hard landing)으로 이번 인플레이션도 경기 침체를 겪어야만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흥록 기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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