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첫해, 미 총기사고 사망자 15% 급증..이유 살펴보니
[경향신문]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 미국에서 총기 사망 사고 수가 26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자살증가 등 사회적 이슈와 함께 코로나19와 관련한 스트레스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는 해석이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10일(현지시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이날 이같은 내용이 담긴 총기 사망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전했다.
CDC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미국에서 총기 관련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살인과 자살을 합해 4만3595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9년과 비교하면 15% 늘어난 수치다. 이중 자살 사건이 2만4245건으로 절반 이상으로 나타났다. 인구 10만명당 8.1명 꼴로 전년의 10만명당 7.9명에서 소폭 올랐다.
반면 총기를 이용한 살인 사건은 급증했다. 2020년 총기 살인 사건은 1만9350건으로 2019년 수치인 인구 10만명당 4.6명에서 2020년에 6.1명으로 34.6% 껑충 뛰었다. 이는 1994년 이후 26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폭이라고 CDC는 밝혔다.
아리 데이비스 존스홉킨스 총기폭력해결센터 정책 고문은 “총기 살인이 1년 새 35%나 증가한 것은 현대 역사에서 가장 큰 폭의 증가”라고 지적했다. 잠정 집계 수치를 보면 2021년에도 총기 사망이 비슷하게 높은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총기 살인사건은 흑인에서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흑인이 희생자인 총기 살인사건은 2020년 전년 대비 39.5%나 증가한 1만1904건에 달했다. 특히 15~32세 흑인이 2020년 전체 총기 사망 희생자의 38%를 차지했다. 이들이 미국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매우 큰 비중이다. 이 연령대 흑인이 총에 맞아 숨질 확률은 같은 연령대 백인과 비교해 20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총기 살인사건은 대체로 빈곤한 지역에서 많이 발생했고 증가율도 높았다. 가장 빈곤한 카운티들에서 발생한 총기 살인과 총기 자살은 가장 부유한 카운티들보다 각각 4.5배, 1.3배 높았다.
NYT는 정부 관리나 외부 전문가들은 총기 사망이 이처럼 증가한 뚜렷한 원인을 찾지는 못했다고 전하며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CDC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사회경제적 스트레스 요인을 가중시켰으며 이러한 현상이 살인과 극단적 선택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내놨다. 일상적인 의료 서비스의 차질과 불평등한 접근권, 경찰의 무력사용에 대한 항의, 가정폭력의 증가, 고질적인 인종 차별로 인한 열악한 주거 환경과 높은 빈곤율 같은 문제가 악화했다는 것이다. 2020년은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으로 미국 전역에 긴장감이 높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토마스 사이번 CDC 폭력예방부서 과학담당 부국장은 “서비스와 교육의 변화와 중단, 사회적 고립, 주택 불안정, 일상 생활비 충당의 어려움 등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된 스트레스 요인이 작용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CDC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봉쇄가 일상화됨에 따라 총기 판매가 가속화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캘리포니아 대학 총기 폭력 연구원에 따르면 팬데믹 이전 보다 현재 1500만개의 총이 더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법 집행관과 범죄학자들은 팬데믹뿐만 아니라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시기에 총기 구매가 증가하는 경향으로 미루어 보아 2020년 대선이 분열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데브라 하우리 CDC 수석부국장 대행은 “총기 폭력은 중대한 공중보건 문제”라고 지적하며 녹지 조성 프로젝트를 통해 빈곤 지역에서의 총기 폭력을 최대 29%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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