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도 후회도 않는다"..우토로 방화는 '증오 범죄'였다
우토로 마을, 기억하십니까? 태평양 전쟁 때 교토에 있는 비행장 건설을 위해 반강제로 끌려갔던 조선인들이 만든 마을입니다. 지난해 이 마을에서 불이 크게 났었는데요, 집 7채가 불에 탔습니다. 왜 이 마을에 불이 나게 된 것일까요.
마이니치신문이 오늘(11일) 이 우토로 방화 사건으로 기소된 아리모토 쇼고(有本匠吾·22)를 인터뷰한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오는 16일 재판이 열리는데, 구치소에 있는 아리모토를 편지 등을 통해 인터뷰한 것입니다.
■ 방화범, 평화기념관 건립 소식에…
1941년 1천300여 명의 조선인이 비행장 건설을 위해 이곳에 지어진 합숙소인 '함바'에서 살게 된 것이 우토로 마을의 시작입니다. 4년 뒤 전쟁이 끝나면서 조선인들은 갈 곳이 사라지게 되자 우토로에 남겨졌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을엔 풍파가 많았습니다. 상하수도도 없는 이곳에 사는 재일교포를 돕기 위해 일본 시민단체가 나섰는데, 얼마 되지 않아 땅이 제3자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소송이 이어졌고, 2000년 주민들은 재판에서 졌습니다.
쫓겨날 위기에 놓인 주민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한일 양국의 시민단체가 나섰고, 토지 매입 비용 일부를 우리 정부가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곳에 우토로 주민을 위한 아파트를 짓도록 해줬는데, 주민들의 집이 헐리면서 '우토로의 역사'가 사라질 것을 우려한 시민들의 의견이 모이면서 우토로 평화기념관이 들어서게 됐습니다.
■ “반성도 후회도 않는다”
방화 사건은 모두 그가 무직인 시절에 이뤄졌는데요. 병원에서 근무하던 그는 코로나 19 백신 접종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일터를 그만뒀다고 합니다. 마땅한 직업이 없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것이 범죄에 영향을 줬을까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토로 주민들은 사회보장, 의료비, 공공비 등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데, 불평등을 느낀다.”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요. 마이니치 신문은 우토로 마을이 있는 우지시 관계자의 말을 빌려, 우토로 주민들이 '무상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요약하자면, 잘못 알게 된 사실들로 인해 범죄가 벌어졌다는 겁니다.
■ 우토로의 증오 범죄…가깝고도 먼 한일
현재 우토로 마을에 남아있는 주민들은 모두 2세들입니다. 처음 일본으로 건너와 뿌리를 내린 1세대 조선인들은 세상을 떴습니다. 남아있는 2세들도 70대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대화할 때 일본어를 사용하지만, '어머니'나 '아버지' 같은 단어는 한국말을 쓰고 있습니다.
새 정권이 들어서고 한일관계를 회복하자는 정치인들의 주장이 연일 들려옵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가깝고도 또 먼 나라인 두 나라의 역사는 우토로 마을처럼 현재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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