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많은 '울고 있는 아이들'..무엇이 달랐다면, 지킬 수 있었을까[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2022. 5. 1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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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
변진경 지음 | 아를 | 372쪽 | 1만7000원

2020년 한 해 아이 3만905명이 학대당했다. 43명이 사망했다. 주로 부모가 죽였다. 저자는 통계로 종잡을 수 없는 참극의 이면을 좇아간다. 아이들은 맞아 죽고, 굶어 죽고, 불타 죽는다. 자녀 살해·학대 사건에서 준비되지 않은 출산, 철없는 부모, 불균형한 양육 부담에다 실업, 가난, 고립, (술·담배·게임) 중독 같은 위험 요소가 드러난다. 저자는 ‘만약 무엇이 달랐다면 그 아이가 살 수 있었을까’라는 마음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그 빈틈을 메우려 한다. “어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은 오늘 일어난 더 끔찍한 사건으로 덮여 대중의 기억 속에서 멀”어지는 일회성 보도들 와중에 잊혀진 사건·존재를 찾아간다.

살아남은 아동학대 피해자와 가족은 “그야말로 ‘각자도생’”한다. 국가 기관은 외면한다. 제도는 작동하지 않는다. 2013년 아이 돌보미에게 머리를 맞아 뇌손상을 당한 서연이(당시 17개월) 엄마 서혜정씨가 가해자 수사 촉구 과정에서 경찰에게 들은 말은 “애가 죽은 것도 아니지 않으냐”다. 한쪽 시력을 잃고, 한쪽 다리가 불편해진 서연이의 치료·재활 과정이나 재판 과정에서 서씨는 아무런 경제·의료·심리 지원을 받지 못했다. 국선 변호사를 선임하고,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다른 곳에서 알았다. 경찰·검찰 담당자가 다시 까칠하게 말했다. “아, 그거 신청하시게요?” 서씨는 치료·양육, 직장일을 병행하며 ‘아동학대피해가족협의회’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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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부모)와 격리된 아이들은? 학대 피해 아동 쉼터는 76곳(2020년 12월)이다. 늘 ‘정원 초과’다. 아동보호 전문기관 직원이 임시로 자기 집에 데려가기도 한다. 기관을 거쳐간 아이들은? 비행 청소년, 장애인, 심하게는 주검으로 돌아온다. 전국 960명뿐인 기관 상담원들은 문제투성이 아동보호 체계에서 저연봉과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2015~2020년 예산 증가는 18%, 피해 사례 증가는 164%다. “비극의 증가 속도를 행정 개선의 속도”가 따라잡지 못한다. 비극 때면 온나라가 호들갑인데 11월 예산국회 때면 관련 예산을 다 자른다. “오죽하면 우리끼리 ‘차라리 사건이 터지려면 예산 정국 때 터지지’ 하는 소리를 하겠나” “저출산 대책 물론 좋습니다. 그런데 낳아놓은 아이도 지금 지키지 못하고 있잖아요.” 서씨의 말이다.

아이들은 차에 치여 죽는다. 지난 10년간 보행 교통사고로 사망한 13세 이하 어린이가 최소 357명이다. 곳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인도 없는 길에서, 횡단보도에서, 이면도로에서, 학교 정문 앞에서 사망했다. 불법 유턴과 음주 운전으로 죽었다. 운전자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저소득 지역 아이들이 교통사고를 더 많이 당한다.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시속 30㎞ 제한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어린이를 ‘도로 위 흉기’로, 부모를 ‘보험 사기단’으로 조롱하는 “혐오의 지옥도”가 펼쳐진다.

책은 밥, 인권, 교육 문제를 두루 살핀다. 밥을 다룬 장 제목 하나가 ‘지금 아이들 밥상은 슬프게 평등하다’이다. 기초수급 가정 아이는 급식카드로 ‘흙밥(흙수저의 밥)’을 먹고, 서울 대치동 아이는 부모에게 받은 돈으로 ‘길밥’을 먹는다. 길밥이건 흙밥이건 고기, 생선, 과일이 빠졌다. 돈 없어 제대로 못 먹고, 학원 다니느라 바빠 잘 못 먹는다. “있는 집이나 없는 집이나 모든 아이들이 평등하게 편의점 참치깁밥 1+1”로 “돌봄 없는 열량 덩어리를 삼키는” ‘밥상의 평등’이 이뤄지는 것도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그야말로 ‘사각지대’에 놓인, 범죄자 부모를 둔 아이들도 만났다. ‘연좌제’에다 가난으로 고통받는다. 사회적 고립, 부모 부재 속에 비행의 길로 빠지곤 한다. 재민이(16)는 초등학교 때부터 배가 고파 편의점 음식을 훔쳤다. ‘불평등한 나라의 난민 아동 생존기’에선 난민 아이들의 교육권과 건강권, 주거권을 다룬다. 부모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아이 그 자체로 존재하지 못한 채 어른들 세계를 살아가는 ‘어린이 유튜버 노동’ 문제도 들여다본다.

대안도 실었다. 대부분 해외 사례다. ‘K국뽕’에 취한 나라에서 어디 내놓을 만한 어린이 정책·제도는 없다. 저자는 ‘시사IN’ 기자다. 취재 중 만난 아이들은 ‘강제 음소거’를 당한 상태와도 같다고 말한다. “가장 어둡고 그늘진 곳에 놓인 아이들의 목소리까지 ‘음소거 해제’를 요청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종목 기자 jom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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