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인플레는 최우선 국내 과제"..물가 대책 강조하며 야당 비난
[경향신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물가상승으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과 분노를 이해한다면서 인플레이션 대응이 최우선 국내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급격한 물가 상승 원인으로 지목되는 물류 대란, 기름값 상승 등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주요 정책들을 야당이 의회에서 가로막고 있는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해 정부 노력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야당의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정치적 부담을 덜려는 의도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면서 “나는 미국의 모든 가족들이 인플레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 “모든 국민들이 내가 인플레를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의 지난 3월 소비자물자지수(CPI)는 12개월 전에 비해 8.5% 상승했다. 1981년 이후 최고 상승폭이었다. 미국인들이 매우 민감하게 생각하는 기름값도 계속 오르고 있다. 미국자동차협회(AAA)는 이란 현재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 평균이 1갤런(약 3.8ℓ) 당 4.374달러로 지난 2000년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는 인플레 효과를 적용해 보정할 경우 역사상 최고가는 아니지만 전략비축유(SPR) 방출, 에탄올 판매 허용, 정유사 가격 담합 단속 등 바이든 정부가 기름값을 잡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람들이 화를 내고 있지만 그들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치솟는 물가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에 공감을 나타내면서도 물가를 잡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강조했다. 그는 주요 항만에서 수입물품 하역 병목 현상을 개선하고, 휘발유 값 억제를 위해 역사상 가장 많은 전략비축유를 방출했음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일부 중국산 제품에 대해 부과하고 있는 고율의 관세를 완화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11일 4월 물가 관련 통계를 발표한다. 일각에서는 미국 물가 상승 곡선이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고물가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전세계적인 공급망 대란이 지속되고 있는데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정책 등 외부 효과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고자 미국 정부가 천문학적으로 자금을 푼 것이 인플레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이날 의회에서 “인플레 전망은 여전히 매우 불확실한 상태”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로 인한 정치적 난국을 공화당을 겨냥한 공세로 돌파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는 연설에서 “미국인들은 지금 서로 매우 다른 가치를 반영하는 두 개의 경로 가운데 선택을 앞두고 있다”면서 자신의 정책은 노동자와 서민의 생계비를 낮추고, 임금을 인상시키는 동시에 대기업과 부자에 대한 증세로 재정 적자를 줄이지만 공화당은 부자와 대기업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릭 스콧 공화당 상원의원이 연초에 내놓은 경제 정책 프로그램을 지목해 ‘울트라 마가(MAGA) 계획’이라고 비난했다. 마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16년 대선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의 줄임말이다. 스콧 상원의원은 연방소득세 과세를 강화하고, 사회보장이나 건강보험 등 연방정부 복지 프로그램 관련 법의 시효를 5년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할 경우 과세 수준 이하의 소득으로 연방소득세를 내지 않고 있던 사람들이 상당수 세금을 납부해야 하고, 의회가 각종 복지 제도의 갱신 여부를 5년마다 결정하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스콧 상원의원의 주장을 트럼프 전 대통령과 결부시킨 것은 민주당 지지층의 반트럼프 정서를 자극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치솟는 물가는 11월 중간선거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의 경제 정책을 공격함으로써 논쟁 초점의 전환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야당의 경제 정책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임으로써 정부·여당에 쏟아지는 인플레 책임론을 완화시키려는 고육책임 셈이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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