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 못한다"..우크라 여기자 종군기
기사내용 요약
NYT, 타냐 코지레바 종군기 상세히 실어
자포리지아·크라마토르스크·피스키 취재
얼굴에 총맞고 다리가 잘린 소녀들 보고
집·가족 등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 만나
우크라 국민들 중 피해 안본 사람 없어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등 만행이 국제사회의 큰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막상 전투에선 병력과 장비가 열세인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군이 격돌하는 최전방에서 몇 주 동안 전쟁 상황을 취재한 우크라이나 여기자 타냐 코지레바의 종군기를 실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이어 폭발이 일어난다. 한발 한발 계속된다. 난 지하 참호에 숨었다. 출입구도 없고 식량과 식수도 비치돼 있지 않아 벙커라고 할 수는 없는 곳이다. 나무로 벽을 쌓았고 양탄자나 나무 의자에서 잠을 자야하는 곳이다. 충전기와 군복, 철모, 방탄복이 널려 있다. 과자 몇 조각과 초콜릿 바 몇 개만 있을 뿐이다. 최전방 우크라이나군이 머무는 곳이다.
포성이 갈수록 커졌다. 우크라이나 육군 소대장 데니스 고르디에우 중위는 "매일이 이렇다"고 웃으며 말했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10km 가량 떨어진 이곳 피스키에 영국 기자들과 함께 왔다. 지난 4월말 러시아가 2단계 공세에 돌입한 시점이다.
고르디에우 중위는 "러시아군이 모든 걸 파괴하려 든다"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포격부터 하고 탱크가 진격한다"며 우리에게 차를 대접했다.
몇 주 동안 우크라이나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쟁 보도를 해왔다. 전쟁을 "국면" "공세" "점령지"로 묘사하면 쉬울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최전선은 약 500km에 달한다. 돈바스 지방 전역에 걸쳐 있다. 전투가 중단된 곳은 없다. 전쟁이 끝나 일상생활이 재개될 수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만났다. 부상을 입어 인생이 망가진 자식들과 함께 갈 곳을 잃은 여성들을 만났다. 고문당하고 살해된 사람들의 가족들을 인터뷰했다. 방문한 곳마다 집을 잃고 부상한 사람들을 보면서 전쟁 피해를 보지 않은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러시아는 이 모든 것들을 영토를 점령하기 위한 "국면"으로 묘사하지만 내 조국과 우리 국민 모두가 예전과 달라졌다.
피스키에 가기 며칠 전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크라마토르스크에 갔었다. 매일 폭격을 당하는 곳이었다. 1주일 전 러시아군이 기차역을 로켓으로 공격해 여성과 아이들이 대부분인 50여명이 숨졌다. 그들은 피난하면 안전할 것이라고 믿거나 희망하면서 피난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이었다.
한 경찰이 "정말 끔찍했다. 손 발이 없어진 사람들이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모두가 도와달라고 비명을 질렀다"고 했다.
내가 만난 경찰관들은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말하는 동안 무전기가 울렸다. "모든 경찰에 알린다. 폭격이 시작됐다. 방공호로 대피하라."
폭격음이 가까워지는 걸 느끼며 경찰들과 함께 지하 방공호로 대피했다. 방공호에서 녹차를 마시고 농담하면서 긴장감을 풀었다.
지금은 크라마토르스크에서 두어시간 거리인 포크로우스크에서 피난기차를 탈 수 있다. 매일 기차가 절반 가량 빈 채로 출발해 우크라이나 서부로 간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너무 나이가 많거나 피난가기가 무서운 사람들이다.
크라마토르스크에 가기 전 우리는 남부 자포리지아에 있었다. 그곳에서도 전쟁의 상처가 깊었다. 부상과 파괴는 물론 크루즈 미사일 공격도 있었다. 동쪽 160여km 떨어진 마리우폴에서 자포리지아로 도망쳐온 사람들이 많았다. 당국은 지난달 전쟁 발발 이래 2만여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자포리지아 아동병원에서 11살 소녀 밀레나를 만났다.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피난하던 도중 러시아군의 공격을 당했다. 얼굴에 총을 맞았다.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었다. 잠시 눈을 떴지만 금방 숨이 가빠져 진정제를 맞고 다시 잠이 들었다.
밀레나 침대 옆에서 15살 소녀 마샤가 있었다. 자포리지아와 마리우폴 사이에 있는 폴로히의 집근처를 엄마와 함께 걷다가 3m 앞에서 포탄이 터졌다. 파편에 맞아 오른팔이 산산조각났고 어깨가 깨졌다. 오른 다리는 무릎 위를 잘랐다.
밀레나는 지금 많이 회복됐다. 그러나 얼굴의 상처로 그가 겪은 고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마샤는 독일에서 재활중이다. 마찬가지로 참상을 잊지 못할 것이다. 다른 수많은 어린이들이 어떻게 다쳤는지도 모른 채 우크라이나 병원에 누워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자포리지아와 크라마토르스크, 피스키는 특색 있는 문화를 자랑하던 곳이다. 전쟁 전 자포리지아를 떠올릴 때면 드니프로강에 있는 아름다운 호르티드시아섬이나 소련 시절 자동차 공장 ZAZ 자포로제츠를 떠올리곤 했다. 크라마토르스크와 마리우폴은 돈바스의 관문이었다. 피스키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고 멋진 집과 비싼 자동차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지금은 자포리지아를 떠올릴 때마다 숨쉬기 힘들어하는 밀레나와 마샤의 아픔이 떠오른다. 크라마토르스크는 기차역 사건으로 공포의 도시가 됐다. 피스키는 활기찬 고르디에우 중위와 그가 대접한 차로 기억한다.
피스키에 있을 때 고르디에우 중위가 참호 밖으로 안내했었다. 헬멧도 쓰지 않은 채 서방이 지원한 무기를 보여줬다. 단거리 대전차 미사일 NLAW은 사용법이 간단하다고 했다. NLAW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들은 주로 소련시대 쓰던 무기와 화염병으로 전투를 이어가고 있다.
피스키를 떠나 드니프로로 갔다. 3일 뒤 고르디에우 중위가 문자를 보냈다. 러시아군이 다시 돌파하려고 하지만 전처럼 활기차게 "아직은 괜찮다"고 했다. 자신들은 현 위치를 고수할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군은 우리 저항선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가 말하는 우리는 우크라이나군이다.
기록에 따르면 2000년대 초 피스키 주민수가 2160명이었다. 전쟁 직전 주민수가 얼마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난달 말 11명만이 남아 있다고 군인들이 밝혔다. 대부분 노인들이라고 했다. 최근에 피난을 떠난 한 가족은 집이 폭격을 맞아 부상을 당했다고 했다. 그 집 문에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써 있지만 집은 텅 비어 있다. 그들이 안전하게 피난했길 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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