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단심', 눈과 귀, 마음까지 훔친 '인생사극' 등극 예감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2022. 5. 1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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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사진제공=지앤지프로덕션

역사적인 사실만을 그대로 나열하지도, 단순한 사랑 놀음의 직관성도 내세우지 않는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비릿하고 짜릿한 비책이 작품 안을 가득 메운다. KBS2 월화드라마 '붉은 단심'(극본 박필주, 연출 유영은)에 대한 이야기다. '로맨스 정치 사극'을 표방한 '붉은 단심'은 수작이라 불려도 좋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감상은 저릿하고, 여운은 깊다. 

'붉은 단심'은 살아남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내쳐야 하는 왕 이태(이준)와 살아남기 위해 중전이 되어야 하는 유정(강한나)의 로맨스를 그리는 드라마다. 흔한 로맨스 사극일거라 생각했던 단조로운 줄거리는 본 작품의 매력을 1할도 담지 못한다. 이태라는 인물로부터 파생되는 이야기는 인물 간 관계성에 따라 탄탄한 서사를 갖는다. 대립, 동맹 그리고 사랑이 중첩된 이태의 이야기는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 만큼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이태는 조선의 왕이나 그 처지가 저잣거리의 일개 백성보다도 위태롭다. 그를 왕좌로 올린 건 어머니의 죽음이었고 아버지의 희생이었다. 반정으로 왕이 된 아버지 선종(안내상)은 공신들에게 끌려다니는 처지였고, 아들인 이태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공신들은 친정이 폐주의 신하였던 어머니 인영왕후(우미화)를 사사건건 걸고 넘어졌고, 때문에 이태는 세자였던 시절부터 세력이 약했다. 하지만 인영왕후는 폐서인이 되기 직전 스스로 독약을 마시는 비책으로 자신의 아들이 중전의 아들로서 정당한 왕권을 가질 수 있도록 희생한다.

사진제공=지앤지프로덕션

선종은 이를 계기로 신하들을 탄압했고 이태를 지켜냈다. 허나 반정을 이끈 정국공신 좌의정 박계원(장혁)의 권세는 왕보다 위였다. 자신의 정인(情人)인 가연(박지연)을 선종의 계비로 들였고, 세력을 더 크게 넓힌다. 힘없이 살아가던 이태는 저잣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유학수(조승연)의 여식 유정(강한나)을 마음에 두게 되었고,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를 세자빈으로 간택한다. 허나 박계원을 비롯한 반정공신들의 계략으로 유정의 가문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게 된다. 

이태는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이가 또 죽음에 처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하여 옥사에 불을 질러 몰래 유정을 빼내 새 삶을 주었다. 이태는 기억을 잃은 유정에게 자신을 신분을 숨긴 채 보름마다 만나 정을 나눈다. 그리고 유약한 왕인 척 숨죽이며 살았던 이태는 중전 윤씨(함은정)의 죽음을 계기로 반정공신들을 향한 칼날을 드러낸다. 이태는 박계원으로부터 밀집된 반정공신의 세를 나누기 위해 병조판서 조원표(허성태) 여식인 연희(최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새 중전 간택을 앞두고 박계원과 조원표가 대립하고, 이태는 병판에게 힘을 실어준다. 중전 자리를 두고 다투는 대신들에게 이태는 박계원의 질녀와 조원표의 여식 모두를 숙의로 책봉한 뒤 중전윤씨의 3년상을 지낸 후 중전으로 책봉하겠다는 비책을 내놓는다. 이 또한 이태가 의도한 계략이다. 허나 박계원의 질녀는 다름아닌 유정이다. 이태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한 박계원은 그의 정인인 유정을 찾아냈고, 그를 협박해 궁으로 들인다. 궁중에서 유정을 발견한 이태는 요동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사진제공=지앤지프로덕션

4화까지 펼쳐낸 전개는 보는 이들의 숨통을 쥐고 흔든다. 조선시대의 갖은 궁중 권모술수를 담아낸 반전의 한수가 러닝타임 내내 펼쳐진다. '붉은 단심'은 권력을 얻으려는 자와, 이를 지키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안정적인 연출력을 동력 삼아 밀도 높게 그린다. 방송 내내 이어지는 무거운 이야기가 자칫 피로감을 줄 법도 하지만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틈 없는 전개로 몰입도를 잃지 않는다. 무게를 감내하는 서사의 집결력이 무엇보다 탄탄하다.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은 이태와 박계원의 호흡이다. 두 사람은 흡사 빛과 어둠을 보는 듯, 내내 상호적인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내며 시청자들을 끌어당긴다.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도 작품에 몰입도를 높인다. 유약함과 서늘함이 공존한 눈빛으로 어두운 캐릭터를 곧잘 연기해왔던 이준은 드라마 '불가살', '고요의 바다'에 이어 '붉은 단심'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보다 확장시킨다. 예민하면서 혼란한 얼굴로 작품의 본질을 꿰뚫는다. '나의 나라', '뿌리깊은 나무', '추노' 등 사극 연기에 능한 장혁도 역치를 높인 자극적인 얼굴로 시청자를 매섭게 압박한다. 유정을 연기한 강한나의 연기력도 빼놓을 수 없다. 가시 돋힌 얼굴의 이준과 장혁 사이에서 단정한 외형과 무게감이 느껴지는 똑부러진 어투로 결은 다르지만 같은 밸런스를 이뤄내며 작품에 힘을 실는다. 

'붉은 단심'은 인물들이 각자 처한 상황 속에 근사한 서사를 투영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의 방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이태는 유정을 사랑할 수도,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이 작품은 '로맨스 정치 사극'이라기보단 '서스펜스 스릴러 사극'에 가깝다. 사실 적시 혹은 단조로운 판타지에만 기댔던 그간 사극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 작품이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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