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식음료 제왕' 타이 베버리지[아세안 기업열전](21)

2022. 5. 1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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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여행지 태국이 무격리 입국을 재개했다. 태국관광청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총 3979만명이며 세계 8위 수준이었다. 한국에서도 188만7000명 이상이 다녀갈 정도로 친숙한 지역이다. 화려한 볼거리로 가득한 방콕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시는 즐거움은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끼리 두마리가 마주한 그림의 로고가 그려진 맥주가 있다. 바로 창(Chang)이다.

타이 베버리지가 생산하는 태국 창 맥주 / 고영경 제공


창 맥주를 생산하는 기업은 타이 베버리지다. 이 회사의 대표 상품으로 창 맥주를 꼽지만 동남아 전역에서 팔리는 이온음료 100플러스, 오이시(Oishi) 브랜드의 각종 차음료와 교자 등의 가공식품, 메콩(Mekhong)이라는 브랜드의 럼주도 모두 타이 베버리지가 생산하는 상품이다. 베트남의 사이공 맥주도 타이 베버리지 휘하에 있다. 한마디로 타이 베버리지는 태국을 넘어 동남아의 식음료 제국이다.

공격적 인수합병 전략으로 성장

타이 베버리지는 방콕의 갑부 짜런 시리와타나팍티(Charoen Sirivadhanab hakdi)의 인수합병 전략에서 출발했다. 1990년대 말까지 태국의 주류 사업은 사실상 정부의 관할에 있었지만 1999년 주류 생산시설 양허 기간이 종료되면서 정부가 자유화 정책을 펴기로 한다. 짜런은 이 기회를 활용해 11개의 사업장을 인수하면서 타이 베버리지의 덩치를 키웠다. 2003년 58개의 맥주와 주류 비즈니스를 통합하면서 짧지만 강렬한 역사가 시작됐다.

창 맥주는 그가 거둬들인 여러 브랜드 가운데 하나였지만, 1995년 아유타야 지역에서 생산을 시작하자마자 태국 전역에서 인기를 얻었다. 창은 태국어로 코끼리를 뜻하는데, 코끼리는 역사적으로 전쟁과 각종 공사에 동원됐으며 지금도 장수와 신뢰, 왕권과 불교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창 맥주가 회사의 주력 상품이기는 하지만 타이 베버리지는 여러 종류의 증류주와 태국식 럼인 상솜 등 다양한 상품 라인을 갖추고 있다. 통합 이듬해인 2004년 창 맥주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보다 낮은 알코올함량의 맥주 아차(Archa)를 선보이는 등 시장 확대에 나섰다.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용 에탄올을 생산했는데 이는 정부 정책에 따른 사업확장이었다.

타이 베버리지가 생산하는 식음료 / 고영경 제공


타이 베버리지는 2006년 싱가포르 주식시장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사실 태국 내에서 상장을 목표로 했으나, 불교의 영향력이 강한 태국이다 보니 주류사업자의 주식시장 상장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결국 타이 베버리지는 태국 내 기업공개를 포기하고 싱가포르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 결정이 오히려 기업의 성장에 더 큰 디딤돌이 됐다. 태국보다 싱가포르 자본시장이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상장을 통해 얻은 자금을 바탕으로 짜런 회장은 주류 사업에서 음료시장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해나갔다. 2007년 주류와 식음료를 생산하는 유나이티드 프로덕트와 SPM 푸드 & 베버리지 인수, 2008년 레인기어 음료(Wrangyer Berverage) 기업의 에너지 드링크와 커피 음료 부문 인수에 이어 마침내 오이시(Oishi) 그룹을 사들였다. 오이시 그룹 인수는 지금까지 주류와 음료 부문에 사업을 집중하던 타이 베버리지가 식품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입한다는 신호탄이었다. 이와 함께 정부주도로 시작했던 에탄올 사업은 매각을 단행했다. 계속된 공격적 인수합병으로 상품 다각화와 해외시장 확장에 박차를 가하던 타이 베버리지가 아세안 식음료 제왕에 본격 등극하게 된 계기는 2012년 싱가포르의 프레이저 앤 니브(Fraser & Neave·이하 F&N) 인수였다. F&N은 1883년에 설립, 1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으로 부동산 사업에 더해 유통업 부문에서 각종 음료를 생산한다. 100플러스가 대표 상품이고 그 유명한 타이거 맥주도 보유하고 있다. F&N 인수전에는 타이 베버리지와 인도네시아의 리포그룹이 경쟁을 펼쳤지만 138억싱가포르달러를 제시한 짜런 회장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타이거 맥주 제조사인 아시아 퍼시픽 브루어리는 46억달러에 하이네켄에 매각되면서 타이 베버리지 손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타이 베버리지가 생산하는 주류 / 고영경 제공


타이 베버리지의 미래

타이 베버리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베트남으로 향했다. 베트남 대형 상장기업인 비나밀크(Vinamilk)의 지분을 사들이고, 유통업체인 메트로 캐시 앤 캐리 베트남을 인수한 뒤, 2018년 마침내 베트남 1위 맥주업체인 사베코(SABECO) 지분 53.59%를 인수했다. 사베코는 사이공맥주음료주류회사를 줄여 부르는 이름으로 사이공과 333 맥주를 보유한 기업이다. 베트남은 젊은 층 인구가 많아 시장 성장세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지역이다. 게다가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처럼 금주에 대한 종교적 제약이 없어 ‘아시아의 마지막 맥주 낙원’이라고까지 불리는 시장이다. 급속도로 성장하는 베트남 시장 내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사베코 인수전의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타이 베버리지가 제시한 인수금액은 48억달러였다. F&N에 이어 사베코까지 이어진 대규모 인수합병으로 타이 베버리지는 동남아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승부사로 떠올랐다.

아직 태국 내에서 시장점유율 1위는 창 맥주가 아니다. 2020년 기준으로 레오(Leo)가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창 맥주가 2위, 싱하와 아차, 하이네켄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싱하와 레오를 생산하는 분럿 브루어리(Boon Rawd Brewery)가 태국 내 1위 맥주 사업자 자리를 유지 중이지만 식음료 사업 부문과 해외시장까지 고려하면 타이 베버리지를 아세안의 F&B 제왕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22년 4월 20일 기준으로 타이 베버리지의 시가총액은 177억싱가포르달러(127억달러)로 2019년에 비해 40억달러 감소했다. 팬데믹으로 지난 2년간 상당한 타격을 받은 결과다. 그래도 10년 전, 즉 F&N 인수 이전과 비교하면 대략 세 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적극적 인수합병이라는 성장전략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타이 베버리지, 전 세계 식료품 가격이 요동치는 가운데 승부사 기질을 갖춘 태국 기업의 행보와 앞날을 시장과 투자자들이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고영경 선웨이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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