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KF-21 큰 산 넘는 KAI..정권 교체로 사장 바뀌나
작년 4월 출고식에서 첫선을 보인 한국형 전투기 KF-21. 올 한 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외장 분리 시험, 지상 진동 시험, 엔진·항공기 적합성 시험 등을 마쳤고, 현재는 비행 제어·연료계통 지상 시험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어 활주로를 달리는 지상 활주 시험, 전자기 적합성 시험을 거쳐 7월쯤 대망의 초도 비행에 나섭니다. 비행 시험의 시작입니다.
4년간 무려 2,200회 이상 실시되는 비행 시험은 KF-21 개발의 최대 고비입니다. 초고속 실제 비행을 하면 지상에서 안 보였던 결함들이 말 그대로 쏟아져 나옵니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적시에 결함을 해소하느냐에 KF-21 사업의 성패가 달렸습니다.
KF-21 개발을 맡은 한국항공우주산업 KAI도 사상 최대의 모험에 돌입했습니다. KF-21 사업에 실패하면 KAI의 미래도 장담 못하니 KAI는 KF-21에 회사의 전부를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KAI가 뒤숭숭합니다. 항공산업의 물정을 모르는 낙하산 사장이 내려올까 전전긍긍입니다.
김조원 사장과 APT 탈락의 악몽
KAI의 최근 낙하산 사장 중 대표적 인물은 김조원 씨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첫 KAI 사장입니다. 영남대 출신으로 21살에 행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감사원에서 25년간 재직했고, 감사원 사무총장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통령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냈습니다. 항공우주와 어떤 관계도 없습니다. 문재인 캠프 출신으로 19대 대선 논공행상으로 금융감독원장 하마평에 오르다 느닷없이 KAI 사장이 됐습니다.
당시 KAI는 17조 원대 미 공군 고등훈련기 APT 사업에 도전하고 있었습니다. KAI는 록히드마틴과 손 잡고 보잉-사브컨소시엄과 경쟁을 벌였습니다. 전망이 제법 밝았습니다. 하지만 김조원 사장 취임 이후 KAI는 공격적 경영의 DNA를 버리고 적폐 청산에 매달렸습니다. 결과는 탈락.
KAI에 내부 승진은 사치인가
2019년 9월 5일부터 지식경제부 차관 출신의 안현호 사장이 KAI호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김조원 사장 같은 100% 낙하산은 아니지만 구(舊)여권과 관련이 없다 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산업부 경력이 탄탄해 기업 경영자의 자격을 갖췄습니다.
그럼에도 2년 가까이 안현호 사장 체제의 KAI는 헛돌았습니다. 완제기 수출 잔고가 '0'이었습니다. 작년 4월 9일을 기점으로 기사회생의 바람을 타는 분위기입니다. KF-21 개발 속도를 높여 순탄하게 KF-21 출고식을 치렀습니다. 8,700억 원 규모의 백두정찰기 2차 사업도 따냈습니다. 올해 1분기 매출 6,407억 원, 영업익 392억 원으로 깜짝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새 정부 들어 FA-50 경공격기 1,000대 수출을 추진 중이고, FA-50과 T-50 콜롬비아 20대 이상 수출 계약 체결도 임박했습니다.
KAI는 지금 만사 제쳐두고 코앞으로 다가온 KF-21 개발의 최대 난관인 비행 시험에 전념할 때입니다. 향후 4년은 KAI와 KF-21, 두 공동 운명체의 사활이 걸린 시간입니다. KAI에게 필요한 것은 강고한 원팀(one-team)입니다. 낙하산 사장 임명은 겨우 일어서 원팀의 유리컵 들고 살얼음판 걷는 KAI의 등을 밀치는 행위입니다. KAI와 KF-21의 안정적 비상을 위해 '정권 교체=낙하산 사장 투하'의 공식을 폐기해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진정으로 공정과 시장의 가치를 추구한다면 캠프의 공신이 아니라 KAI 내부의 전문가들 중에서 차기 사장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낙하산 사장이 사라져야 직원들도 목표 의식이 생겨 신명나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논공행상 자리가 모자라 굳이 KAI에 낙하산 사장을 보내겠다면 최소한 KF-21 비행 시험이 안정적 단계에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행동에 옮기기를 바라겠습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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