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프릴바이오, 상장 재심사도 고전..신약 개발사 IPO 문턱 넘기 어렵네
신약개발 4개社 고배, 6개社는 대기 중
"10명 임상하고 유효성 주장 곤란" vs "거래소 기준 너무 높아 돈맥경화 우려"
500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LO) 계약을 체결하고도 한국거래소의 문턱을 못 넘어 논란이 됐던 신약 개발사 에이프릴바이오가 재심사에서도 고전하고 있다. 에이프릴바이오는 코스닥 상장위원회로부터 예비심사 미승인(상장 불가)을 통보 받은 후 이의를 제기해 시장위원회의 심의를 받고 있는데, 위원회 측에서 다시 결정을 보류한 것이다.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에이프릴바이오를 포함한 신약 개발사들의 고전이 계속되고 있다. 올해 들어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한 신약 개발 업체는 알피바이오와 보로노이뿐이다.
IPO 시장이 신약 개발사들의 ‘무덤’이 됐다는 지적에 대해 한국거래소와 바이오 투자 업계는 서로 상반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거래소는 미승인 심사를 받은 업체들 대부분이 유효성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거나 내부 통제에 문제가 있었다며, 제약·바이오 업체를 특히 깐깐하게 심사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입장이다.
반면 바이오 투자 업계에서는 앞서 기술특례로 증시에 입성한 선배 기업들이 매출을 제대로 늘리지 못하고 상장 존속 요건을 충족하려 무리한 인수합병(M&A) 등을 추진하자 거래소가 바이오 기업들에 대해 유독 깐깐한 심사를 하고 있다며, IPO가 이렇게 제한되면 투자가 필요한 많은 기업들이 자금난에 빠질 것이라 주장한다.
◇ “단일 파이프라인 의존도 너무 높아…하나 실패하면 줄줄이 타격”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거래소 시장위원회는 최근 에이프릴바이오에 대한 상장 심의를 다시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 적격성에 대한 위원들의 의견이 엇갈리며 합의를 보지 못하자 추가 자료를 받아 재심의하기로 했다.
에이프릴바이오는 지난 3월 말 거래소로부터 상장 예비심사 미승인 통보를 받았다. 작년 10월 덴마크 바이오 기업 룬드벡에 자가 면역 질환 치료제 ‘APB-A1′ 개발 권리를 4억4800만달러(약 5700억원)에 이전하는 계약까지 체결했음에도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에이프릴바이오는 전체 거래액의 3%가 넘는 1600만달러(약 200억원)를 이미 선급금으로 받은 상태다. 선급금은 향후 기술이 다시 반환되더라도 돌려줄 필요가 없는 돈이다. 이익은 커녕 매출도 내지 못하는 바이오 벤처가 태반인 만큼 200억원을 미리 받은 에이프릴바이오는 상장 예심을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예상과 달리 심사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현재 거래소는 에이프릴바이오가 단일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APB-A1′를 제외한 나머지 파이프라인 중 기술이전에 성공할 만한 파이프라인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에이프릴바이오의 후속 파이프라인 중에는 향후 3~4년 내 확실히 기술이전에 성공할 만한 것이 없으며, 모든 파이프라인이 SAFA(재조합 단백질의 반감기를 늘릴 수 있는 항체 절편 활용 플랫폼) 기술에 묶여 있어 만약 한개의 파이프라인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줄줄이 실패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위원회는 에이프릴바이오가 200억원에 달하는 선급금을 받았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 같은 한계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 사정에 정통한 증권 업계 관계자는 “보로노이는 4건의 기술이전에 성공하고도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실패했는데, 단일 파이프라인의 한계가 명확한 에이프릴바이오는 그만큼 리스크가 큰 것이 사실”이라며 “시장위원회 내부에서도 이 때문에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유효성·내부통제 필요” vs “선배들 때문에 피해”
IPO 시장에서의 고전은 비단 에이프릴바이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약 개발사들이 코스닥 시장 문턱에서 낙마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상장 예심을 통과한 신약 개발 기업은 대웅제약그룹에서 계열분리한 알피바이오와 보로노이 두 곳 뿐이다. 퓨쳐메디신은 상장 예심 단계에서 심사를 철회했으며 보로노이는 기관 수요예측 후 공모를 철회하고 이달 중 증권신고서를 다시 제출할 계획이다.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를 낮추거나 공모 주식 수를 줄여 재도전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말에는 디앤디파마텍이 유효성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하며 상장 예심 미승인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 역시 에이프릴바이오처럼 시장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할 예정이다.
그 외에도 6개의 신약 개발사가 초조한 마음으로 상장 예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상장 예심을 청구한 선바이오가 이달 말에야 결과를 통보 받을 전망이며, 11월에 청구한 이뮨메드·넥스트바이오메디컬은 아직 심사 중이다. 거래소 규정상 기술특례상장 예심 기간은 45영업일이지만 상장위원회가 여러 개 기업을 한꺼번에 검토하며 일정이 다소 지연되고 있다.
거래소 측은 신약 개발사에 대한 심사 기준이 까다로워진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관계자는 “제약·바이오 기업에 대한 눈높이가 높다는 얘기가 많아 오히려 더 (긍정적으로 보려고) 신경을 쓰고 있다”며 “유효성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 회사들이 미승인을 받았을뿐, 거래소의 기준은 예년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예심을 통과하지 못한 신약 개발사 중에는 10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고 유효성 입증을 주장하는 회사도 있었다. 대표이사의 배임 등 내부통제에 문제가 있는 기업도 심사에서 미승인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제약·바이오 투자 업계에서는 여전히 거래소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한다. 한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에이프릴바이오의 경우 룬드벡 같은 유명한 회사에 기술이전을 했고 실제로 돈도 들어와, 매출이 발생하는 바이오 벤처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굉장한 강점”이라며 “실제로 에이프릴바이오의 예심 탈락 이후 ‘올해는 신약 개발사에 절대 투자하지 않겠다’는 회사가 늘어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상장사나 대형 병원의 계열사가 아닌 신약 개발사에는 거래소의 문이 아예 닫혀있다시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상장한 바이젠셀은 가톨릭대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이며, 네오이뮨텍은 제넥신의 자회사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거래소는 임상 2상 성공과 기술이전을 상장 예심 통과의 기본 조건으로 요구하는 분위기다. 또 오는 8월부터는 지금까지 획일적으로 진행됐던 기술성 평가 심사를 업종별로 항목을 나눠 진행행하는 방식으로 강화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앞으로 거래소가 기술특례를 이용해 상장하려는 바이오 기업들에 대해 더욱 강화된 심사 기준을 적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VC 관계자는 “앞서 기술특례로 증시에 입성한 선배 기업들이 매출을 제대로 못 내다보니, 상장 존속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무리하게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거나 기업을 인수하며 졸속 경영을 하는 사례가 많다”며 “이 때문에 지금 상장을 추진하는 신약 개발사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 문제가 계속되다보면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는 회사가 줄줄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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