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하나마나' 갈 길 먼 카드사 벤처투자
은행이나 증권사들이 큰돈이 몰리는 벤처투자 시장에 뛰어들어 적잖은 이익을 거두는 가운데, 유독 카드사들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기술 금융을 늘리는 차원에서 카드사에도 벤처투자를 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줬지만, 지난해 주요 카드사 가운데 절반 이상이 벤처투자에 단 한 푼도 쓰지 않았다.
11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주요 8개 카드사 신기술금융 관련 자산은 총 883억2400만원으로 집계됐다. 2020년말과 비교하면 1년 만에 763억원이 늘었다. 얼핏 보면 카드사들이 관련 투자를 크게 늘린 것 같지만, 통계를 뜯어보면 전체 자산 가운데 92%에 해당하는 816억원이 신한카드 투자분이다. 나머지 8%는 KB국민카드(46억원)와 롯데카드(21억원)가 나눠 가졌다.
신기술금융은 새 기술을 개발하거나 응용해서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스타트업(신기술사업자)에 투자 혹은 융자를 해주는 사업이다. 쉽게 말해 기존 벤처캐피탈(VC)이 하는 ‘벤처투자’에 가깝다. 실제 신기술금융회사로부터 발행 주식 총수 대비 10% 이상을 투자받은 기업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인정하는 ‘벤처기업’으로 지정된다. 다만 카드사가 이런 기업에 투자하려면 금융당국의 허가(라이선스)가 필요하다. 현재 전업 카드사 8개 중 삼성카드를 제외한 7개 카드사는 이 라이선스를 갖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 롯데카드를 제외한 나머지 네 카드사는 지난해 말 기준 신기술금융 관련 자산을 전혀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라이선스를 손에 쥐고만 있고, 투자는 한 건도 집행하지 않은 셈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5년 전만 해도 카드사들이 먼저 신기술금융 자격을 달라고 요청해서 허가를 해줬는데, 그동안 제대로 돈을 쓰겠다고 나선 곳이 거의 없다”며 “지난 2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투자하기가 어려웠다고 하지만, 그동안 다른 은행이나 증권사들은 이전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벤처)투자를 하지 않았느냐”고 꼬집었다.
중소벤처기업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투자 금액은 2020년보다 78.4% 증가한 7조6802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카드사들이 막 신기술금융 라이선스를 받기 시작한 2017년(약 2조 4000억원)에 비하면 4년 사이 3배가 넘게 커졌다. 시중에 유동성(자금)이 대거 풀리면서 이 돈 상당수가 벤처업계로 흘러 든 덕분이다.
카드사들 역시 딱히 투자를 하지 못할 만큼 자금 사정이 어렵지 않았다. 지난해 카드사 전체 순익은 코로나19 여파에도 소비심리가 회복되면서 2020년 대비 34%(1조5638억원)가 늘었다. 그러나 벤처투자에 지갑을 연 카드사가 줄면서 전체 벤처투자 금액에서 카드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1.1%까지 줄었다.
한 금융지주 계열 카드사 관계자는 “지난해 실적이 나쁘지 않았지만, 안정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카드론 같은 대출성 자산에 대해 대손충당금을 더 적립하다 보니 이전보다 직접 투자를 하기가 더 어려웠다”며 “금융그룹 내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계열사가 있고, 이 계열사들이 투자하는 자금 규모가 훨씬 큰 편이라 의욕만으로 투자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가령 삼성카드는 카드업계 수위권 업체임에도 여태 신기술금융 라이선스를 따지 않았다. 그룹 내 삼성벤처투자라는 전문 투자사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카드는 문화공연사업을 중심으로 신기술금융 투자를 하다 코로나19로 공연 유치가 어려워지자 2020년 5월 이후 현재까지 투자를 중지했다. 이 사이 하나금융그룹에 속한 전업 신기술금융사 하나벤처스가 주된 벤처투자를 맡았다.
8개 카드사 가운데 오로지 신한카드만 신기술금융에 수백억원대 목돈을 쏟아 부으며 관련 투자를 강화했다. 신한카드는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들이 처음부터 전략적 투자펀드(SI)를 조성해 신기술금융을 새 먹거리로 삼았다. 신한카드는 투자사와 보이스피싱 예방 서비스를 선보이거나, 금융 관련 인공지능(AI) 기술을 개발하는 식으로 본업과 관련한 협업을 강화해 실익을 추구하고 있다.
금융개발원 관계자는 “최근 몇년간 기술 관련 스타트업에 자금이 많이 몰렸지만, 앞으로 연방준비제도(Fed)이 양적긴축을 시작하면 이전 같은 대규모 투자는 당분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자금력이 부족한 카드사들이 거대 VC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오히려 양적긴축 이후 벤처투자업계에 거품이 빠지고 난 후 알짜기업, 금융관련 기업을 찾아 내실있는 투자를 하는 방식을 추구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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