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걸리면 끝장" 우리은행 614억 횡령에 은행권 '초긴장'

박슬기 기자 2022. 5. 11.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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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에서 일어난 614억원의 횡령사고로 인해 은행권에선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사진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점 전경./사진=우리은행
우리은행에서 일어난 614억원의 횡령사고로 인해 은행권에선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행여나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횡령사건이 금융당국의 엄격한 검사에 따라 밝혀져 징계를 받지 않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11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지난달 28일부터 전체 영업점과 본부부서를 대상으로 보관 중인 통장의 보관관리와 업무처리 적정성을 점검하고 있다. 특히 보관 중인 통장이 반드시 정해진 용도 범위 내에서 내부통제 절차를 준수하며 관리되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점검 중이다.

우리은행의 횡령 사건에 KB국민은행은 자체적으로 내부통제 시스템 전반을 점검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근 KB국민은행장은 지난 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정은보 금융감독원장과 간담회를 갖는 자리에서 "(우리은행 횡령 사태가 발생한) 당일 내부통제를 체크했다"며 "조직 내 경각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해 한번 체크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도 우리은행 직원 횡령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28~29일 1차적으로 당행과 타사 보유 자산 등 모든 자산에 관련한 계좌 보유 적정성, 지급처리 적정성에 대한 점검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달부터 감사부서에서 전체적인 내부통제 시스템 적정성에 대한 추가 점검을 실시 중이다.

우리은행의 한 지점에선 지점장이 직원들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내용과 함께 내부통제 규정을 준수하자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은행권에선 차장급 직원이 614억원을 횡령한 것과 관련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1~2억도 아니고 수백억원을 횡령하는 6년동안 이를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다"며 "횡령금을 회삿돈으로 메꾸고 손실로 반영해도 고객의 돈으로 운영되는 은행의 신뢰가 깨진 것은 수습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내부에서도 614억원의 횡령 범죄를 두고 "황당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횡령 직원 A씨는 긴급체포된 당일에도 출근하는 여유를 보인 것은 상식밖의 일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번 횡령사건엔 'A씨 개인의 악한 마음과 이기적인 범죄때문만 이었을까'라는 질문엔 물음표가 달린다. A씨가 내부 문서를 위조하고 눈속임할 때 이를 의심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는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공문서 위조까지… 치밀했던 614억원 횡령


A씨의 횡령 계획은 치밀했다. 614억원의 회삿돈은 과거 우리은행이 매각을 주관했던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자금으로 2010년 11월 옛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이 우리은행에 낸 계약금이다.

채권단은 엔텍합이 낸 계약금을 몰취했는데 이를 A씨가 우리은행이 아닌 다른 시중은행 별도 계좌에서 관리를 해오면서 이를 횡령한 것이다. 엔텍합의 대주주인 다야니 가문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간 소송(ISD)를 제기해 승소했지만 우리은행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계약금을 반환하지 못하다가 최근 계약금을 돌려주기 위해 계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횡령 사실이 드러났다.

A씨의 횡령 수법은 문서 위조다. A씨가 2012년 173억원, 2015년 148억원을 수표로 빼가고 2018년 293억원을 계좌이체방식으로 빼갔을 때 문서 위조가 동원됐다. 그는 2012년 10월에는 소송 공탁금으로 2015년에는 부동산 신탁 전문 회사에 돈을 맡겨두겠다며 상급자를 속이고 회삿돈을 빼돌렸다.

2018년에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돈을 맡기기로 했다는 문서를 위조해 승인받은 뒤 동생이 대표로 있던 회사 계좌로 이체했다. 이체 뒤에는 해당 계좌를 바로 없애기도 했다.

특히 A씨가 마지막 횡령을 했던 2018년 6월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을 약 3주 앞두고 횡령해 금융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여기서 은행 측은 A씨가 횡령을 시도했던 세차례 모두 그의 말만 믿고 사실관계를 따로 확인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일각에선 실제 드러난 횡령범죄가 일부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EY한영이 지난달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회계·재무·감사 담당자들 4명 중 1명이 회사 내에서 임직원에 의한 횡령이나 회계부정을 목격하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향후에 본인 회사에 횡령 또는 부정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변한 응답도 전체의 35%에 이르러 횡령과 부정 방지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간 경쟁이 제한된 상태인데다 예대마진 확대 등 앉아서 돈을 버는 은행들이 많은 상황에서 은행들이 안이한 경영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금감원이 수시 검사해도 은행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횡령 등 사고는 계속 재발될 것이고 우리은행에선 안일한 경영을 탈피하기 위한 전사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 발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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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슬기 기자 seul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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