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74년 청와대 시대 마감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끝나길

조선일보 2022. 5. 11.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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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출범에 맞춰 청와대 국민 개방 기념 행사가 열린 1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정문이 열리고 있다. 개방 행사는 오는 22일까지 열리며 온라인 신청자 중 당첨자만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6차례에 걸쳐 6500명씩 매일 3만9000명이 관람할 수 있다. 2022.5.10/뉴스1 ⓒ News1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74년 만에 청와대가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됐다.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 등도 대선 과정에서 집무실 이전을 약속했다가 막상 당선되고 나서는 경호나 안보 등의 사유를 대며 청와대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강한 의지를 보이며 결국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계속됐던 ‘청와대 시대’를 마감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청와대는 일반 국민은 범접할 수 없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의 상징하는 장소로 군림해왔다. 과거 경복궁 후원이었고 일제 총독부 관저, 미 군정 사령관 관저 등으로 쓰였던 이곳은 시작부터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공간이었다. 도심에 위치해 밖에서 내부가 보일 정도로 개방적인 미국·영국·일본·프랑스 등의 대통령·총리 집무실과는 천양지차였다.

게다가 미국 백악관 면적의 3배가 넘는 25만㎡ 면적에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비서들이 일하는 여민관 사이의 거리가 500m가 넘어 도저히 일하는 장소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구중궁궐(九重宮闕)’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전직 청와대 비서들은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하려면 차를 타도 결국 5분, 걸어가도 10분이 걸렸다”고 했다. 본관, 관저, 여민관, 춘추관(기자실)이 수백m씩 떨어져있다. 미국 대통령이 문만 열면 바로 연결되는 비서진을 수시로 불러 모아 ‘난상 토론’으로 긴급한 현안에 대처한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청와대는 대통령을 왕처럼 떠받드는 구 시대의 유물과도 같다.

윤 대통령은 10일 0시 새로 이전한 용산 집무실의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에서 합동참모본부로부터 군 통수권 이양에 따른 첫 보고를 받으며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는 10층짜리 건물 하나에 대통령 집무실, 비서실, 기자실이 모두 들어가 있어 현안에 관해 수시로 보고와 토론이 이뤄질 수 있다. 언론과도 충분한 소통이 가능한 구조다.

그러나 집무실 이전이 윤 대통령의 역사적 결단으로 평가될 수 있느냐는 단순한 장소 이동을 넘어서 한국에서 마침내 ‘제왕적 대통령’ 시대가 끝나느냐에 달려있다. 윤 대통령이 권위를 벗어던지고 내각과 야당, 국민들과 수평적 소통을 이어가겠다는 약속을 진실로 실천할 것이냐는 것이다. 아직 초기이지만 일부 장관직 인선과 의혹 문제를 처리하는 데 제대로 소통이 이뤄지고 있느냐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시대’를 마감한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없애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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