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지하의 삶과 문학] 김지하의 꽃시절, 생명의 미학 있었다

김진형 2022. 5. 1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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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시 '오적'으로 부패 비판
국내 최초 노벨문학상 후보 추대
투옥 후 선·화엄·동학사상 영향
원주 환경생명운동 계보 이어가
동강댐 백지화 밤샘농성 참여도
김지하 추모제·도서 발간 이어져
내달 25일 '생명 평화 천지 굿'

“이봐/내겐 꽃시절이 없었어/꽃 없이 열매 맺는 게/그게 무화과 아닌가(김지하 시 ‘무화과’ 중)”

지난 8일 세상을 떠난 김지하(사진) 시인의 시는 언뜻 저항과 생명사상 이분법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그의 시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된다. 생명이 상호작용하는 김지하의 사상과 문학은 우리 내면을 다시 보게 만든다.

고인은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원주에서 생명환경운동으로 강원의 가치를 이었다. 1999년 고 박경리 작가가 공동대표로 있던 환경운동연합이 주도한 동강댐 백지화 촉구 밤샘농성에 참여하는 등 강원도를 중심으로 생명살리기운동에 열정을 다했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지난 9일 SNS를 통해 “1993년 환경운동연합을 창립할 때 나는 환경을 주장했고 시인은 생명을 주장했다. 그래서 만든 캐치프레이즈가 ‘환경은 생명이다’였다”고 밝혔다.

김지하는 1970년대 시 ‘타는 목마름으로’와 ‘오적’을 통해 유신체제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 저항시인으로 평가된다. 염무웅 문학평론가의 표현을 빌리면 “섬광처럼 예리한 감성과 굽힐 줄 모르는 비판정신의 시인”이었다.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라는 절창이 담긴 시 ‘타는 목마름으로’는 가수 김광석, 안치환 등이 노래로 부르며 민중들에게 널리 퍼질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했다.

한일협정반대운동에 참여했던 김지하는 1970년 사상계에 발표한 담시 ‘오적’으로 필화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검찰은 “‘오적’이 계급의식을 조성하고 북한의 선전자료로 이용됐다”는 이유로 그를 반공법 위반으로 체포했다.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의 부패를 을사오적에 비유한 ‘오적’은 판소리 형식을 해학적으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담시’라는 말은 고인이 창안했다. 우리 민족의 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극과 노래, 서정과 서사가 혼합된 독특한 시 형태를 뜻한다. 1975년에는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추대되어 올랐다.

김지하는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약 10개월 만에 출옥했지만,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글을 썼다가 재수감돼 6년여간 복역하고 1980년 석방됐다. 장모 박경리 작가는 사위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며 옥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김지하는 극심한 가혹행위로 고초를 겪고 출옥 후에도 후유증을 앓았다. 2014년 국가로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고 법원은 15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자살은 전염한다. 당신들은 지금 전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열사 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

1991년 민주화 투쟁에서 연쇄 분신을 질타한 신문 칼럼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의 일부다. 김지하는 이로 인해 변절자로 낙인 찍혔다. 김지하 구명운동을 벌였던 진보성향 문인단체 민족문학작가회의가 그를 제명했다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역사의 굴곡을 온 몸으로 겪으면서도 조직과 정파에 몸 담지 않았던 김지하의 자리는 한국 현대사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현 시대에 필요한 큰 상상력을 줬다. ‘지하’에서 활동하겠다는 필명이 삶으로도 전이됐다. 그 씨앗은 초기시 ‘황톳길’부터 있었지만 생명운동은 무위당 장일순과 함께 1980년대 초 본격화됐다. 수감 중 읽은 다양한 사상서의 영향도 컸다고 한다.

1986년 생명사상과 민족 서정을 결합한 시집 ‘애린’ 이후 본격적으로 내적 세계에 집중했다. 그의 생명사상은 예수, 선불교, 화엄, 미륵, 동학까지 이어져 보편적 생명관을 만들어냈다. 그의 생명사상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산업화 문제를 근원적으로 짚어낸다. “돌멩이 하나에도 살려는 마음이 있다”는 인식은 세계를 거대한 생명체로 바라보는 개념이다. 원주에서 활동한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 박경리, 장일순의 사상과 궤를 같이한다.

성민엽 문학평론가는 1989년 김지하의 문학과 사상을 다룬 평론에서 “김지하가 동서고금의 여러가지 사상에 열렬한 관심을 표하는 것은 그것들이 그의 생명의 세계관과 맥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지하는 2018년 시집 ‘흰 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마지막으로 절필했다. 민중과 생명, 모든 관계에 깊은 뿌리를 두고 대립을 감싸안으며 해방을 꿈꾼 김지하의 미학적 가치는 원주가 생명사상의 발원지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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