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이렇게 편지를 사랑하는 것일까

이현숙 2022. 5. 10.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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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서울 도봉구 이동진 구청장
이동진 서울 도봉구청장이 지난 4일 창동 도봉구민회관 안에 자리한 편지문학관에서 직접 쓴 편지를 느린우체통에 부치는 시범을 해보이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에 나오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표현대로, 우리의 마음도 자세히 볼수록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4일 도봉구민회관 1층에 자리잡은 편지문학관에서 만난 이동진(62) 도봉구청장은 오는 16일부터 시작되는 ‘전국 편지쓰기 공모전’의 의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국 편지쓰기 공모전’은 기초지자체가 진행하는 행사로는 전국에서 처음이다. 물론 기초지자체가 편지문학관을 만든 것 역시 전례 없는 일이다. 또한 ‘3연임 제한 규정’에 따라 오는 6월말 퇴임을 앞둔 그에게 ‘공모전’은 마지막 구정 활동이 될 듯싶다.

그는 왜 이렇게 편지를 사랑하는 것일까? 이 구청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초지자체 최초 ‘편지문학관’ 개관
3월부터 시범운영 2천여명 다녀가
‘정치 스승’ 김근태 옥중편지 비롯
추사·안중근·전태일…위인들 글 전시

16~20일 ‘첫 전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비롯 일반인 편지도 전시”

서울 도봉구청(구청장 이동진·왼쪽)과 한겨레신문사(대표이사 김현대·오른쪽)는 10일 편지문학관에서 ‘전국 편지쓰기 공모전’ 업무협약을 맺었다. 도봉구청 제공

그의 첫 대답은 “우리의 마음 속 따뜻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전달되는 간단한 문자 등은 효율성은 좋을지 모르지만, 마음까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지만 편지는 보내는 이가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보아야’ 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구청장은 그러므로 편지를 나누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면 “스스로 마음 속 온기를 느끼고, 상대방에게 그 마음을 전하면서 따뜻함이 먹처럼 번지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는 16~20일 진행하는 ‘전국 편지쓰기 공모전’의 주제는 ‘5월 가정의 달’과 ‘우크라이나 평화 기원’으로 정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게 매우 중요한 주제들인만큼 국민이 차분히 마음으로 돌아보며 정리했으면 하는 취지라고 한다.

편지문학관 구상은 4년 전 외교관을 지낸 지인에게서 일기를 주제로 한 외국의 박물관 얘기를 들으면서 떠올랐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기보다는 편지가 주민들에게 마음의 온기를 느끼게 하고, 청소년들에게 생각을 키우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서울 도봉구 편지문학관에서 소개해놓은 한국 역사 인물들의 육필 편지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이번 공모전에 맞춰 공식 운영을 시작하는 편지문학관은 이미 지난 3월14일부터 시범 운영중인데 그사이 2천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전시실은 286.2㎡(87평) 규모인데, 시대별 편지의 역사와 변천 과정을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편지를 매개로 한 국내외 문학작품까지 모두 10가지 주제로 꾸몄다. 조선 후기 문인이자 명필인 추사 김정희나 1970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자신을 불살랐던 전태일 열사 등 국내외 역사 속의 문인·위인·예술인들이 남긴 편지를 모아 놓았다. 서한체 소설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패널 형태로 볼 수 있다.

문학관을 둘러보던 이 구청장의 발걸음이 한 곳에서 멈췄다. 고 김근태 전 열린민주당 의장이 쓴 옥중편지 앞이었다. 그에게 김 전 의장은 정치적 동지이자 스승이다. 그는 1980년대 김 전 의장이 주도해 만든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에서 활동했고, 김 전 의장이 국회의원이 되자 그의 비서로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이 구청장은 “암울한 독재와 인권탄압의 시대에 그의 민주화를 위한 열망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편지문학관은 마음을 표현하는 체험 공간도 갖췄다. 글로 차마 전하지 못하는 진심을 옛날 전화기로 녹음하고 직접 들어 볼 수 있는 독립된 작은 공간이다. 반대쪽 공간에서는 전화기로 녹음된 익명의 음성 편지를 들을 수 있다. 이 구청장은 “하루 30여명이 녹음을 할 정도 꽤 인기가 있다”고 했다. 청소년과 청년들의 취향에 맞춰 곳곳에 디지털 장치도 해두었다. 전시실 가운데 있는 미디어 테이블에서는 편지카드를 꽂으면 원본과 요약 해석본을 볼 수 있다. 안중근 열사 등 역사적 인물 23명의 편지가 내장되어 있고, 화면을 터치하면 검색할 수 있다.

그러나 편지문학관 조성은 아직 ‘진행형’이다. 마음을 전하며 감동을 주는 편지를 찾아 앞으로도 계속 전시물을 늘려갈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번 공모전 수상자들이 그 첫 번째 주인공이 될 듯하다. 시상은 초등 저학년과 고학년, 중고등부, 대학·일반부 4개 부문으로 나눠 한다. 대학·일반부 수상자에게는 후원사인 한겨레신문사 사장상도 함께 준다.

이 구청장은 “‘빨리빨리’와 ‘치열한 경쟁’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이 편지를 보며 잠시 삶의 여유를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02)998-4028.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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