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안나" "순간 화나서"..사형 구형 권재찬 시종 '오락가락 진술'
시신 매장 과정·밀항 등 일부 진술 과정에 치밀함 드러내기도
(인천=뉴스1) 박아론 기자 = "미리 (시신을) 옮기다가 들키면 안되니깐, (시신은 인하대역 주차된 차량 트렁크에 두고 또 다른 살인 피해자인 50대 남성) 지인이랑 단 둘이 을왕리로 가서 (시신을 매장할)구덩이를 파 두고 나중에 시신을 옮기려고 했다."
10일 오후 인천지법 제15형사부(재판장 이규훈)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강도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권재찬(53)이 검찰 측 심문에 한 답변이다.
그는 이날 재판을 마치기 전 검찰과 변호인의 피고인 심문을 받기 위해 재판부 앞에 섰다. 그는 범행 도구 등 구체적인 범행 수법과 관련된 검찰 측 심문과 관련해서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거나 횡설수설하며 구체적인 진술을 회피했다. 재판 내내 주장하고 있는 '계획 범행'에 관해서 부인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검찰은 "2003년 1심에서 무기징역 선고 당시 강도살인 범행에서도 돌망치를 사용했는데, 시신 유기 공범인 지인과 모의 당시 도구를 구입한 게 아니라 이전에 망치를 구입한 이유는 무엇인지, 공범인 지인도 미리 살해 계획을 세운 게 아닌가"라고 묻자 권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또 여성 살해 당시 건물 벽면에 여성의 계좌 비밀번호를 적은 것과 관련해 "누나가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물건을 사오라고 해서다"라면서 "건망증이 심해서 적어놨다고 진술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이 "CCTV를 확인하면 비밀번호가 기재된 곳으로 가는 장면은 딱 1번 보이는데, 피해자가 물건을 사오라고 해 차량 밖으로 나가는 시점 등 진술과 그 장면에 찍힌 시점이 3시간 이상 차이 나며 맞지 않는다"고 추궁하자 권씨는 다시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그는 범행과 관련된 구체적 진술을 요구하는 검찰의 질문에는 시종일관 횡설수설하다가, 범행 동기와 관련된 질문에는 곧잘 진술을 쏟아냈다.
권씨는 "피해자에 갈비뼈 골절상 등이 발견됐다"는 질문에 "뼈가 골절이 돼요?"라고 반문한뒤 "건망증이 심한데 담배와 휴지를 사오라는 피해자의 심부름을 받고 사오질 못하자 '넌 남자가 할 줄 아는게 뭐냐'는 말을 듣자 이성을 잃었다"고 했다. 이어 시신 유기 공범인 50대 남성 지인 살해와 관련해서는 "피해여성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려고 하는데 비밀번호가 맞지 않자, 돈을 독차지하려는 것을 의심한 지인(50대 남성)이 '니가 사기쳤으니까'라며 짜증을 내며 성질을 내 화가 났다"고 진술했다.
권씨는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며 범행의 책임을 피해자들에게 전가하는 태도를 드러냈다.
범행 전 인터넷에 '인적없는 거리', '부평 논 밭 많은 곳'을 검색한 이유와 관련해서도 "여자친구와 드라이브를 하기 위해 인적 없는 거리를 찾은 것 뿐"이라며 범행과 관련된 검색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ATM절도', '복면강도', '블랙박스' 등 검색과 관련해서도 각각 다른 이유를 대며 범행과의 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검찰의 잇따른 질문이 계속되자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어차피 형은 정해진 거 아니냐", "CCTV에 다 찍혀 있지 않나?"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시신을 1차 유기 장소에 방치한 뒤 공범인 50대 남성 피해자와 을왕리로 가게 된 배경 등 일부 범행 과정에 대해 치밀함을 엿볼 수 있는 진술을 하기도 했다.
그는 시신을 1차 유기 장소에 두고 공범과 단 둘이만 매장장소에 간 이유와 관련해서 "구덩이를 파두기 전 시신을 옮기면서 들통날까봐"라고 했다. 또 중국 밀항 시도 전 조력자에 연락을 취하지 않은 이유과 관련해서는 "대포폰이 없었고, 조력자와 연락을 시도하면서 조력자를 통해 범행이 드러날까봐"라고 했다.
그는 검찰 측 심문에 계속해서 "CCTV에 찍혀 있지 않느냐"라고 말하면서 CCTV를 의식하는 모습도 보였다.
여성 피해자 사망 시점은 지난해 12월4일 오전 7시경. 현장 이탈 시점은 오전 9시로 3시간 사이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사실 누나가 살아 있었다"며 "한참을 고민했는 데 숨쉬는 누나를 보면서 겁이 나서 앉았다가 일어났다를 반복하던 사이 시간이 많이 흘러서 누나가 죽었다"고 언급했다.
휴대전화와 블랙박스가 범행 장소 등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검찰 측 심문이 이어지자 그는 '블랙박스'와 관련해서 "성인오락실에서 도박을 하다가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현장에 있던 블랙박스를 재생하라고 했더니 재생이 되지 않았다"며 "(특정 시간에)여성 둘만 있는 시간이 있는데 수면제로 재우고 오락실 현금을 훔치려고 모의하는 과정에서 검색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날 권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또 782만2000원의 추징과 20년의 전자장치 부착명령, 5년간의 보호관찰 명령도 청구했다.
권씨의 1심 선고공판은 6월 중 열릴 예정이다.
권씨는 지난해 12월4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한 건물에서 50대 여성 A씨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를 먹인 뒤 폭행해 살해한 뒤, 1132만2000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기소됐다.
또 시신유기 범행에 끌어들인 50대 남성 B씨에게 A씨의 통장 돈을 인출하게 해 A씨 살인 범인인 것처럼 위장하고, 다음날인 5일 오전 B씨에게 "A씨 시신이 부패해 범행이 들통날 수 있으니, 땅에 묻으러 가자"고 인천 중구 을왕리 한 야산으로 유인해 B씨도 살해 후 유기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그는 도박 빚 9000만원을 비롯해 최소 1억3000만원가량의 빚이 생기자 오프라인 모임으로 알게 된 A씨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은 뒤 범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권씨는 범행 직전 A씨에게 쓸 수면제를 처방받고, 인터넷에 '인접없는 거리', '부평 논 밭 많은 곳' , 'ATM절도', '복면강도' 등을 검색하기도 했다. 또 그는 범행 후 중국으로 도피 계획도 세웠다.
경찰은 범행의 잔혹성 등을 고려해 신상공개위원회를 열고 권씨의 신상을 공개했다.
aron031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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