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원 임명한 윤석열, 검사시절엔 '증거조작 사건' 비판했다
[한겨레 프리즘] 노현웅 | 법조팀장
지난주 8년 남짓 만에 서초동(법조팀) 취재 현장에 복귀한 뒤 어리둥절한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검찰 수사권을 제한하는 법 개정이 마무리돼 법조팀 취재영역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고, 취재원인 법조인들과의 관계에서도 낯선 일투성이다.
이 가운데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일은 현장 기자로서 취재했던 옛 이름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호명되는 순간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시원 전 검사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발탁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때가 대표적이다.
이 전 검사는 법무부 검찰과에서도 가장 힘이 세다는 인사담당(속칭 ‘1-1호 검사’)으로 일하다 2012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이 인사는 검사들 사이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전국 검사인사 실무를 총괄하던 ‘성골 기획통’이 공안을 부전공으로 삼다니, 검사들 사이에서 “공안이 세긴 세구나”란 쑥덕거림이 나왔다.
이듬해 그가 맡았던 사건이 전국적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이른바 ‘증거조작 사건’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2013년 초 탈북 화교 출신인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를 간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유씨 동생 유가려씨의 진술이 핵심 증거로 제시됐다. 하지만 유가려씨는 법정에서 “국정원의 회유와 협박으로 거짓자백했다”고 폭로했고, 재판부는 유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씨가 간첩임을 입증한 핵심 증거였던 동생의 진술이 쓸모없게 되자, 국정원은 유씨가 북한을 몰래 드나든 증거라며 중국 허룽시 공안국 명의 유씨 ‘북한-중국 출입경기록’을 추가 증거로 냈다. 하지만 이 서류는 위조문서였고, 논란이 일자 국정원은 이 문서가 진짜라는 가짜 확인서까지 꾸며 검찰에 넘겼다. 이 전 검사는 이 위조된 문서들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하지만 결국엔 제출된 서류들 모두 가짜란 사실이 들통났고, 대대적인 수사와 진상조사가 이어졌다. 문서를 위조한 국정원 직원들은 재판에 넘겨졌고, 이를 법정에 제출한 이 전 검사는 정직 1개월 징계를 받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위조에 가담했다는 증거는 없다는 이유였다.
서울중앙지검 출입기자로서 당시 검찰 진상조사 결과는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웠다. 수개월에 걸친 수사와 기소, 치열한 1심 법정다툼 끝에 무죄가 선고됐는데, 이전에 없던 결정적 증거들이 갑자기 발견됐다는 우연을 검사가 믿어준다? 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든 조작된 증거가 재판에 제출됐는데 검사의 책임은 고작 정직 1개월이면 족하다는 것인가? 하지만 당시 검찰 구성원 대다수는 그의 ‘실수’를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답답증이 가시지 않던 가운데, 한 검사와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자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귀를 쫑긋 세워가며 들은 얘기들을 퇴근 뒤 낱낱이 메모해두었다. 최근 찾아낸 그때 메모의 일부를 옮겨 본다.
“예를 들어보자 말이야. 경찰에서 수사를 하는데 검찰 쪽 내사정보가 필요해. 그래서 달라는데 ‘우리(검찰)가 줄 수 없다.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줄 수도 없다’ 그렇게 잘랐다 말이야. 그러니까 경찰관 하나가 아는 검사 통해 받았다며 ‘무혐의처분 통지서’ 이런 걸 내놨다고 쳐. 그런데 이건 무조건 위조야. 공문서라는 건 (발급) 신청자가 있고 발급자, 수신자가 있는데, (이시원 전 검사가 재판부에 낸) 문서에 수신자가 없는 거야. 그러면서 이걸 (검찰이) 발급했다는 확인서도 가져왔어. 그런데 그 확인서란 게 컴퓨터로 출력한 서류에 도장만 딱 찍혀 있어. 이걸 증거로 받는다?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거야.”
당시 이런 말을 한 검사는 여주지청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다. ‘말이 안 되는’ 짓을 했다던 검사는 청와대 안에서도 중책을 맡았다. 윤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었을까, 아니면 우리 편이면 증거조작 같은 일은 별다른 흠결이 되지 않는 세상이 된 걸까? 윤 대통령의 설명이 듣고 싶다.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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