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임영웅, 상상할 수 없었던 행보

2022. 5. 1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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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임영웅이 최근 정규 1집을 발매하며 복귀했다. 작년 9월에 '미스터트롯' 계약이 종료된 후 약 반 년 만의 복귀다. 그동안 KBS 단독쇼를 하고 OST '사랑은 늘 도망가'도 발표했지만 본격적인 활동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상 공백기였다고 할 수 있다. '미스터트롯' 오디션 후 후속 활동 계약 기간이 1년 반 동안 이어졌고, 그후 반년 이상의 공백기가 더해졌기 때문에 일반적인 오디션 스타라면 이미 스타성이 많이 식었을 시점이다.

하지만 임영웅의 정규 1집은 놀랍게도 발매 첫 주에 한터차트 초동 판매량 110만 2012 장을 기록했다. 만약 '미스터트롯' 직후에 여세를 몰아 앨범을 발매했다면 더 높은 수치가 나왔을 것이지만 현재의 기록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오디션이 끝난 후 2년 이상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초동 판매량 솔로 신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관련 집계가 시작된 이후 솔로가수로서는 최초의 100만 장 돌파다. 역대 전체 순위 8위에 올랐다.

초동 100만 장을 기록한 가수는 방탄소년단, 세븐틴, NCT드림, 그리고 임영웅이다. 임영웅을 제외하곤 모두 남성 한류 아이돌이다. 이 아이돌 세 팀이 역대 초동 순위 1위부터 7위까지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 아이돌은 아무리 한류스타라 해도 남성 아이돌 수준의 판매량이 나오지 않는다. 보통 한류 아이돌의 음반 매출은 해외에서 많이 발생한다. 그러한 해외 팬덤 지원을 받는 여성 한류 아이돌조차 초동 100만 장 벽을 넘지 못했었다. 임영웅은 이번에 블랙핑크, 아이즈원, 트와이스도 못했던 초동 100만 장 기록을 세우며 1급 남성 한류 아이돌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놀라운 건 임영웅에게 해외 팬덤 지원이 없었다는 점이다. 즉 국내 팬덤 화력만으로 한류 아이돌들 수준에 올랐다. 이것은 국내로 한정했을 때 그 인기가 아이돌들을 뛰어넘는다는 이야기다.

오디션 출신 솔로 가수가 프로그램 종료 2년 후에 앨범을 냈는데 솔로 최대 기록을 세우며 한류 아이돌 수준 위상에 오를 거라곤, 과거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오디션도 일반 오디션이 아니라 트로트 오디션이었다. 트로트는 지방 행사 무대에서 사랑 받지만 가요계 트렌드에선 변방으로 밀려난 부문이었고, 앨범과 음원 차트에서 아이돌과 경쟁하는 건 아예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미스터트롯' 제작진도 자신들 프로그램이 이런 정도의 역사적인 스타를 배출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임영웅은 트로트 오디션 스타로서 상상할 수 있는 위상을 이미 벗어났고, 오디션 전체로 따져도 비교할 대상이 없는 수준이다. 이번 100만 장 돌파 역대 솔로 신기록을 통해 임영웅이 국민가수의 위상에 올랐다는 점이 확인됐다.

음악적으로도 국민가수의 행보다. 이번 정규 1집 타이틀곡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인데 이적이 작사/작곡했다. 이적은 트로트와 거리가 매우 먼 뮤지션으로 이번 곡도 이적 특유의 발라드 형식이다. 바로 그런 노래가 임영웅의 정규 1집 타이틀곡이 된 것이다. 정규 1집의 상징성은 크다. 해당 가수의 음악적 방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앨범에서 임영웅은 발라드곡을 간판으로 정했다. 이것은 자신이 비록 트로트 오디션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지만 트로트란 장르에 한정되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

타이틀곡 말고도 이번 정규 1집엔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수록됐다. 심지어 오토튠으로 목소리를 변조한 힙합곡까지 들어갔다. 그러는 한편 트로트 곡들도 빠지지 않고 배치됐다. 이렇게 다양한 음악을 한 음반 안에서 시도하는 가수는 흔치 않다. 누군가 시도는 할 수 있겠지만, 판매량 100만 장 수준의 메이저급 엘범 중에선 임영웅 1집이 독보적인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임영웅이 음악적으로도 국민가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한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는 광범위한 음악을 최상의 수준으로 구현한다.

그동안 한국 대중음악계에선 아이돌 편중 현상이 극심했다. 한류 아이돌이 모든 차트를 독식하면서 연말 결산 무대나 시상식도 아이돌 독무대였다. 음악적으론 발라드, 댄스, R&B 힙합 천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사람들을 제외한 국민들은 중심 가요계를 외면했고, 우리 대중음악은 음악방송 등의 중앙무대와 지방 행사 무대로 완전히 분리됐다. 그 두 세계는 거의 상호 소통이 없는 다른 나라와 같았다. 그럴 때 임영웅이 나타나 아이돌 독식 철옹성을 혁파하고 차트 상위곡 장르를 다변화한 것이다. 정규 1집의 놀라운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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